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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26 아침기도회

조회 25

교목실 2026-07-13 15:53

260526 삼상2:6-9 뛰어내린 만큼 다시 오를 수 없는 인간

 

  1. 놀이공원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것은 롤로코스터이다저는 그 내장과 겉의 몸이 따로 노는 데서 오는 느낌을 안 좋아해서 즐겨 타지 않았다.미국에서 청년부를 지도할 때 식스 플랙스”(six flags)라는 놀이공원에 가서 그런 놀이기구를 탔다거의 90도로 올라가서 떨어지는 것은 너무 무서워서 못 타고 그나마 덜 무섭다고 해서 탔는데 그것도 아직 기억에 남을 정도로 무서웠다어깨 위로 매달리게 하고는 다리가 동동 뜬 채로 롤러 코스터를 탔다무서우면 눈을 감고 또 다리에 힘을 주면 덜 무서웠던 것 같은데 다리가 허공에 떠 있으니 여간 무서웠던 것이 아니었다그것이 한국과 미국을 통틀어 제가 롤러 코스터를 탄 마지막 경험이다.

 

  1. 잘 아시겠지만 롤러 코스터에는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된다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전환되면서 속도를 즐기는 것이다그러니까 롤러 코스터를 타면 처음에는 기계의 힘으로 힘껏 가장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린다그 다음부터는 낙하하는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변환시켜서 스릴을 즐기는 것 아닌가? 그리고 점점 그 운동에너지가 작아지면 롤로코스터는 멈추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론적으로 롤러 코스터는 절대 처음 가장 높이 올라갔던 높이만큼 다시 올라갈 수 없다.

롤러 코스터가 아무리 빨라 보여도 처음 올라간 높이보다는 반드시 낮아지게 되어 있다. 그렇게 낮아지고 속도가 줄면서 롤러 코스터는 멈춘다여하튼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에너지는 흐르면서 사라진다는 물리의 법칙을 롤러 코스터는 정확히 보여준다사람들은 인생을 이와 같은 롤러 코스터에 비교하면서 결국 인생지사 세옹지마며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는 숙명론에 빠지기도 한다.

 

  1. 이러한 물리의 법칙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로 시시포스 신화 이야기가 있겠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 또는 시지프라고 불리는 신화 이야기를 다 아실 것이다시시포스는 코린토스의 건설자이자 왕인데 신들을 속였다는 이유로 형벌을 받는다. 그의 형벌은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것. 그러나 그 바위는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그리고 시지프는 다시 밑에서부터 바위를 또 정상으로 밀어 올린다. 그리고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

 

  1. 이 모습은 물리의 법칙을 넘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현대인의 삶을 연상케 한다또 세상 살면서 이해 안 되는 일을 접하거나 답을 찾아도 답이 없어 보이는 듯한 상황을 연상케 한다.

 

  1. 알베르 카뮈는 아예 [시지프의 신화] 라는 책에서 이러한 인간의 삶을 부조리라고 말했다이러한 부조리한 세상을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크게 그는 회피와 반항을 말한다회피는 자살과 내세 소망 등을 말할 수 있다. 반항은 철저히 자신이 운명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열정을 갖고 사는 것이다.

     
  1. 그의 결론은 반항이다.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무너지지도 않고 현실을 직시하며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즐기면 더 이상 고통이 아닐 수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그것을 우리가 살아야 할 인생이라 생각한다결국 중력의 힘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을 구르는 삶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신을 의지하지도 않고 스스로 직면하면 행복한 인간의 삶이 된다고 말한다.

 

  1. 그러나 기독교의 가치와 이상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른다그렇게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고 그것을 깨닫는 것만이 삶의 전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낮아져서 다시 올라올 에너지가 물리적으로는 없지만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올리시고도우심으로 중력의 법칙을 이겨 산 정상 너머로 돌을 굴러 내려뜨릴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고 신이라고 말한다.

 

  1. 오늘 본문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 내용을 담고 있다거기에 인간의 한계와 신의 역할과 탁월성이 드러난다: 신만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지옥에 내려가게도 하고 다시 돌아오게 한다는 고백이 나온다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신다. 가난과 절망의 상황에서 들어올리시는 분은 주님뿐임을 찬양한다모든 것의 기초는 세상을 떠받드는 주님에게 있다고 찬양한다.

 

  1. 스스로의 힘으로는 뛰어내린 만큼은 내려온 만큼은 더 높이 뛰어오르지 못하는 인간의 삶이지만, 신은 그 법칙을 이기고 더 높이기도 더 세우기도 더 힘을 주기도 하시는 분이라는 찬양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입대해서 받은 기초 군사훈련 중에 막타워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이 있었다.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펴고 내리는 것을 위한 훈련이다.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낀다는 11m 높이에서 이뤄진다조교가 묻는다: “아무개 후보생 준비되었습니까?” “예!” “애인 있습니까?” 그러면 애인이 있는 사람은 애인이름을 부르면서 낙하한다그러나 애인이 없다 그러면 어머니하고 뛰어내리게 한다저는 그 당시 결혼 전이었기에 어머니하고 부르며 뛰어내린 것으로 기억한다.

 

  1. 이름 부르면서 뛰어내리는 것 그것은 그냥 한 외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힘과 믿음의 힘, 그리고 누군가 나를 돕고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은 현실의 고통을 정말로 이기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속삭임은 이 믿음과 사랑의 고귀한 힘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속임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사람들은 카뮈의 주장을 비평한다. 그의 반항은 현실도피적 자기 위안이다시지프의 돌처럼 끊임없는 반복을 인간의 삶이라고 직시하고 사는 것이 힘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반복적인 시간을 넘어, 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시며 물리적 법칙을 어기시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결국 정상 너머로 돌을 넘겨 버리고는 영원한 자유를 느끼는 삶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 묵상과 자아도취, 정신승리로 버티기에는 인생의 챗바퀴는 버겁다. 그것이야말로 회피다, 카뮈는 칼 야스퍼스와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신에 대한 인정과 용납을 회피라고 보고 비판했지만,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용기 있는 인간의 선택인 것이다.

 

  1. 예수님의 에너지는 물리의 법칙을 거스른다오늘 제목처럼 인간은 자기가 뛰어내려온 만큼 스스로 올라갈 수 없는 존재다. 인간과 달리 예수는 가장 낮은 곳에 왔다가 다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다그리고 그런 에너지를 우리 인간에게도 공급해 주신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다른 이름이라고 보면 되겠다.

 

  1. 물리의 법칙을 거스르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게 한다뛰어내린 것 이상으로 다시 나를 높이 올리실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하나님이다. 내가 나이가 먹어 힘이 빠져서 돌 굴릴 힘이 없어지더라도 저 정상 너머로 돌을 넘기시고 더 높이 나를 올려 세우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주신 에너지로 여전히 힘차게, 신나게 인생을 즐기며 천국까지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하고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우리를 세우시고, 도우시고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를 높이시고 훈련시켜 더 큰 삶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힘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주신 힘으로 내 삶의 현장에서 더욱 힘있게 실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