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28 아침 기도회 버퍼링 호감 (요8:4-9)
- 오늘날 테슬라로 대표되는 전기차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한 블로그의 제목이 흥미를 끌었다. “우리는 이미 전기차를 탔다!” 다름 아닌 테마 파크에 가면 남녀노소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범퍼카를 이름이었다. 프랑스에서 1927년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미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범퍼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초기에 그 범퍼카의 이름은 닷젬(dodgem)이라고 특허를 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닷젬은 “다지(dodge)”에서 온 말로 피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초기의 이 놀이기구의 목적은 대놓고 부딪히는 데 있지 않고 부딪히지 않고 피하는 데 있었다고 한다.
- 오늘 설교 제목 “버퍼링 호감”이 너무 독특하여 설교 제목으로 어울리지 않을 법까지 하다. 버퍼링은 우리가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 경험하는 정체현상을 생각하면 크게 다름이 없다. 그러나 버퍼링의 원래 목적 중 하나는 데이터가 수신되다가 불안정하여 질 경우 바로 멈추는 것을 막기 위해 데이터를 보관하는 저금통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영상 등을 보다가 잠시 데이터 수신이 불안전하더라도 미리 버퍼라는 저금통에 담아두었던 것을 흘러가게 하여 끊이지 않고 영상을 보게 돕는 것이라고 한다.
-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닷젬처럼, 버퍼링처럼 충돌이나 끊김을 방지하는 예수님의 지혜를 볼 수 있다. 그 당시 유대 전통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어야 할 간통녀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예수님 앞에 놓였다. 만약 놓아주라고 하면 전통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 되고,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면 평소에 예수가 강조했던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여 위선자로 불리게 될 처지였다.
- 이 난감한 순간에 예수님이 다소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신다.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 쓰기를 시작했다.무엇을 쓰셨을까? 혹자는 그 앞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쓰셨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상상일 뿐 무엇을 썼는 지는 알 수 없다.
- 그런데 그 모습은 우리가 배워야 할 예수님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이른바 닷젬과 버퍼링의 지혜를 보여 주시기 때문이다. 악의를 가지고 율법을 들이미는 사람들을 닷지(dodge), 즉 피하시면서 생각의 버퍼링 공간을 벌고 준비하신 것이다. 우리가 사회 생활할 때도 필요한 지혜라고 본다. 하물며 신도 이렇게 닷지와 버퍼링의 시간과 공간을 가졌는데 우리는 더욱 필요한 법이다.
- 계명대 동문으로 이제는 좀 연식이 되어 총기를 잃은 김진홍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시다. 일전에도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분이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이분이 강사로 오셔서 본인이 농촌 목회를 하던 때의 에피소드를 소개해 준 적 있다. 하루는 교회에 있는데 한 마을 주민이 찾아왔다고 한다. 교회 안 다니는 중년 이상의 남성이었다고 한다. 다가오는 주일 준비 등으로 시간이 바쁜데 그렇게 불쑥 찾아왔더란다. 그리고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듯, 신세한탄부터 시작하여 주저리주저리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고 한다. 중간에 바쁘다고 말을 끊을까 하다가 오죽하면 나한테 찾아와서 말을 걸까 싶어 계속 들어줬다고 한다. 계속 계속…그러다가 결국 그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집에 갔다고 한다.
- 그런데 돌아오는 주에 그 분이 온가족을 다 데리고 교회에 예배 드리러 왔다는 거다. 어찌된 연고인지 예배 후 그분에게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전날, 그렇게 잔뜩 말을 하고 집에 돌아가 생각해보니 목사님이 너무 고맙게 느껴지더란다. 이건 그 분이 한 말이 아니지만 “마누라도 안 들어주고, 자식은 몰라주고, 시간도 안 내주고 똥개도 잠잔다고 내 얘기 안 들어주는데” 이렇게 내 말을 들어준 게 너무 고맙더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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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보답할까 생각해 봤는데 ‘목사님들은 보통 교회 나오면 좋아하는 것 같더란다.’ 그리고 이왕 보답하는 거라면 통 크게 하자 그래서 온 가족을 다 데리고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분에게 잠시나마 김진홍 목사님은 커다란 버퍼링이 되어 주시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때로 바로 부딪히지 않고 때로 버퍼링처럼 담아만 두어도 좋은 결과를 빚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 그렇게 글을 쓰시던 예수님 얼마나 지났을까 멋진 지혜의 말을 하신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유대 율법을 어기지도 않으면서도 동시에 사랑의 정신을 담은 말이 아닐 수 없다. 신도 이런 지혜를 버퍼링의 시간을 통해 생산해 놨다면 다소 신성모독일까? 주님의 지혜를 담아 때로 우리도 문제가 우리를 압도할 때면, 잠시 그 문제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잠시 결정을 유보하고 생각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참고로 혹시 뭔가 쏟아놓고 싶은데 대상이 없으면 저를 불러 주시라. 김진홍 목사님처럼 오래는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들어드릴 용의가 있고 답은 드리지 못해도 들어드리는 것은 잘 할 수 있다. 제 귀를 보시라. 크지 않나? 농담 삼아 저보다 귀가 큰 사람은 아직 한명밖에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한 명이 궁금하신가? 바로 제 친형이다.
며칠 전에도 길을 가다가 갑자기 걸려 온 전화를 받으려고 들어간 건물 로비에서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전화통화가 끊어질 때까지 기다리신 그 분은 저와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하였다. 그분이 젊었을 때의 경험과 군대 이야기, 한창 열정적일 때의 일 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저녁 때 카톡으로 보내온 그분의 젊을 때의 사진을 보고 다시 한번 멋지다고 마음을 표현하며 나눌 수 있었다.
- 여러분의 일과 시간 속에 닷젬과 버퍼링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럴 때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고, 답이 보이고, 지혜가 떠오른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버퍼링으로 결국 죄 많은 여인을 살리신 것처럼, 시공간을 넘어 우리를 살리기 원하는 변함없는 예수님의 마음과 터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 오늘도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는 버퍼링의 은혜가 여러분의 분주한 마음과 시간 속에 크게 임하길 축복한다. 아멘
하나님, 때로 커다란 문제 속에 잠시 결정을 미루고 기다리며 기도하며 주님의 지혜를 간구하는 우리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손가락으로 글을 쓰시는 그 시간으로 결국 큰 지혜를 나누어 생명을 살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우리의 삶의 공간과 시간에도 적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크게는 미국과 이란이 전쟁의 충돌이 아니라 피하며 기다리는 지혜를 통해 평화를 찾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