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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14 아침기도회

조회 31

교목실 2026-07-11 16:13

260414 아침기도회 -둘의 소원을 말해 보세요 마 20:29-34

  1. 일본 화장품 스파 회사의 한 광고다. 과장된 광고를 하는 곳으로 유명한데 이 광고도 그런 종류이다. <영상 이 광고를 보면 위급한 상황이나 선택의 상황에서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소원이 꼭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1. 1972년에 고 김민기씨가 작사, 작곡하고 양희은 씨 등이 부른 노래로 [작은 연못]이라는 곡이 있다가사가 허무주의를 조장하고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하지만 1980년대 후반 금지곡에서 해제되었고 그후에는 오히려 서정적이고 교훈적인 가사라 하여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동요처럼 불리는 곡이 되었다.

  2. 노래 가사 1절이 이렇다. 여러분은 어떻게 들리는가? 한번 제가 읊어보겠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의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 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1. 성경에는 다양한 사람이 나온다그런데 악한 사람은 몰라도 소위 신앙적으로 모범될 만한 사람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특히 예수님의 어록과 활동이 주로 소개되는 신약성경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그런데 아주 예외적으로 대판 싸운 이야기가 있다. 바로 바울과 바나바의 싸움이다.

 

  1. 신약 성경에서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인물이 바울이라는 사람이다그는 전통적으로 신약성경 27권 중 13권이나 되는 책을 썼다고 알려진 사람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리스도교는 바울교라고 부를 정도다그런 그였지만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그가 바나바라는 사람과 심하게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참고로 바나바는 유대인 바울의 회심을 믿고 예루살렘 교회에 다리를 놔줬던 의인이었다그의 덕분에 그는 그리스도를 자유롭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다.

  2. 그런데 왜 그와 싸웠을까바나바의 조카 마가라는 사람 때문이었다1차 전도여행 때 이 마가는 힘들다는 이유로 그냥 지 맘대로 돌아갔다.
  3. 그런데 2차 전도여행을 떠나려는데 바나바가 마가를 데려가자고 하는 것이다이에 바울이 안 된다고 한다. 쉽게 말해 전도여행이 놀러가는 것도 아닌데 1차 때 힘들다고 돌아간 사람이 또 돌아가지 않는 법이 있겠는가 하는 취지였다바나바는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입장이었다.

 

  1. 서로 이 일로 다퉜는데 성경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15:39). 여기서 다투다는 말을 헬라어 원어에서는 파록쉬스무스라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훗날 영어 단어로 파록시즘-발작 (paroxysm)을 뜻하는 단어가 나왔다.

 

  1. , 바울과 바나바가 어떻게 다투었냐고 했을 때, 발작 경기가 나듯 그 정도로 심하게 다투었다는 말이다그렇게 훌륭하다는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를 데려가는 문제로 발작이 날 만큼 심하게 싸웠다는 것은 참으로 의외의 장면이라고 하겠다결국 둘은 갈라섰고, 바나바는 그 사건 이후 아예 성경에서 이름도 나오지 않게 되어버렸다이런 위인도 발작이 날만큼 싸우는데 우리가 뭐라고 안 싸울 수 있겠는가?

 

  1. 위로가 된다. 기독교인도 싸울 수 있고 다툴 수 있다. 화낼 수 있다그런데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 싸움의 목적인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짜장면 먹을 지 짬뽕 먹을 지로 싸운 게 아니다단순히 마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일을 어떻게 해야 더 잘 할 수 있는가 하는 큰 목적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운 것이다

    우리의 싸움의 목적도 우리의 분노도 이렇게 목적 있는 분노와 다툼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런 목적의 분노와 싸움이라면 그 끝은 언제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훗날 이 싸움의 원인 제공자였던 마가는 바나바의 교훈과 양육 덕에 크게 바뀌었고 최초의 복음서라 할 바로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가 되었다.
  1. 오늘 본문은 두 명의 시각장애인이 예수를 만나 눈을 뜨게 되는 사건을 담고 있다예수님이 소리지르면 자신들을 고쳐달라고 외치는 그들을 만나러 오셨다그리고는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냐고 물으셨다참고로 흥미로운 점은 다른 복음서에는 이 똑 같은 사건을 다루면서 맹인 2명이 아니라 1명이 소원을 아뢰는 것으로 나와 있다.

 

  1. 그런데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소원을 내 놓는다눈을 뜨게 해 달라고 외친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은 그들을 어루만지면서 눈을 뜨게 해 주셨다이 두 명의 친소관계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얼마나 눈을 못 보면서 살아왔는지도 알 수 없다당연히 눈을 뜨게 해달라고 하지 않겠는가 하겠지만, 둘의 상황과 꿈은 다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 본다. , 실례가 되고 엉뚱한 상상이 될 수 있겠지만, 두 명의 공통된 목적이 꼭 눈을 뜨게 해 주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고 본다.

 

  1. , 신께서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고 했을 때, 눈을 떠도 먹고 살기 힘드니 차라리 편안히 살 수 있는 돈이나 집을 최우선순위로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앞서 본 영상을 생각해 보면 둘이 반드시 같은 소원을 외칠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되며 당연한 것이라고 봐도 안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번의 소원에 공통된 목소리를 낸 것, 즉 맹인의 공통된 하모니는 주님의 감동을 불러 일으킬 소원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 본다.

 

  1. 가끔 예능 프로에 보면 짓궂게 부부에게 첫 키스 장소를 묻거나 손을 처음 잡은 곳을 동시에 답하게 한다. 그렇게 동시에 답하는 데 한 명은 A 장소 한 명은 B 장소를 이야기 하면 난감해 지는 거 아닌가? 그런 데 나갈 경우라면 미리 소통해 놔야 난감해지지 않고 부부 간의 더 큰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1. 하나님이 우리 부서에 하나의 소원을 들어준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저는 우리 공동체가 잘 되려면 우리가 공통된 목적을 공유하고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너와 내가 다르지만,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처럼 서로 심히 다툴 수 있지만그럼에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그 한가지를 같이 말할 수 있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건강한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꿈을 향해 길은 좀 다를 지라도 한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틀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1. 우리 모두는 다 나름 자신의 소신과 생각으로 살아간다또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부딪힐 수 있고 때로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부서와 우리의 학과의 발전을 위한 공통된 목표가 있으면 우리는 다르나, 또 가끔 싸우나, 자주 다퉈도 걱정이 없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발전을 꿈꾼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 이 적용을 세계로 넓혀도 적용할 부분이 많다. 여전히 죽고 살기도 싸우려는 중동의 전쟁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하나님!!! 다름이 다툼으로 확대되어 가는 죄된 인간의 군상을 불쌍히 여겨 주셔서 하나는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삶이라는 공통된 소원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간구하여 본다한가지 소원을 들어달라고 할 때, 상대방의 멸망을 외치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해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각각 그렇게 들어주면 둘 다 멸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1. 이 우주를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신뢰한다. 같을 수는 없고 같아질 필요도 없지만 살기 위해서 하나의 건강한 목표를 공유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모양은 달라도 결국은 전진해 가는 우리 학과, 우리 부서, 우리 학교, 우리 공동체, 우리 세계가 되길 축복하고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다양한 우리의 개성과 생각을 활용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맹인 두사람이 입을 모아 공통된 소원을 외쳤던 것처럼 우리의 모습과 생각이 다르지만 한가지의 공통된 목표가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며 전진하며 힘을 합치는 우리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다름이 창의력으로 발휘되고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우리의 학과 우리의 부서 되게 지혜와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