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5:19-23 지속되어야 할 증언
- 장안의 화제인 영화가 있다. 단종과 그를 진심어린 마음으로 아끼고 돌본 엄흥도의 이야기를 다룬 “왕과 사는 남자”란 영화다. 4월 기준으로 누적관객 16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1400만명을 넘을 때도 한 말이지만 1600만명이 되도록 이 영화를 안 보신 분이라면 앞으로도 안 볼 확률이 매우 높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 영화와 그리고 실제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나눠도 괜찮을 것 같다.
- 역사를 통해 이미 알 듯이, 17세 단종은 1457년 세조 3년에 영월에서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세조는 그의 시체를 그의 유배지 앞 동강에 던지게 하고는 누구든지 그의 시체를 거두는 자는 3족을 멸한다는 서슬퍼런 명령을 내린다. 그 명을 어기고 단종의 유배지의 호장으로 단종을 돌봐 왔던 엄흥도가 목숨을 걸고 그의 시신을 거둔다.
-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엄흥도는 한밤중에 단종의 시신을 업고 산을 올라 올라 지금의 장릉 자리에 그의 시신을 암장한다. 그리고 엄흥도는 그의 세아들과 함께 영월을 떠나 죽을 때까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숨어지냈다고 한다. 장릉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의 조선 왕릉 40기 중에 유일하게 수도권에 없는 왕릉이라고 한다. 즉, 그렇게 노산군 단종의 묘는 영월이라는 외진 곳에 버려지다시피 하였다.
- 1541년 중종이 노산군의 무덤을 찾아보라는 명에 따라 영월군수 박충원은 수소문 끝에 단종 노산군의 묘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때가 벌써 그가 죽은 지 84년이나 지났던 때였다. 그리고 1698년 단종이 죽은 지 241년이 지나서야 숙종에 의해서 그의 무덤은 노산군의 묘에서 단종이라는 왕릉으로 복권이 되었다고 한다.
- 그 긴 세월 묘비하나 없이 영월 산속에, 그것도 봉분도 없이 평평한 맨땅이었던 단종의 묘는 어떻게 발견되고 확인되었을까? 대대로 영월사람들은 알고 기억하고 전했던 것이다. 그의 죽음을 동정했던 사람들은 입으로 입으로 그의 무덤자리를 전했다고 하며 누구도 엄흥도 일가의 행방을 발설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조차 그 무덤을 향해 돌을 던지지 않았다고 한다. 관에도 고하지도 않았고 조정도 이미 죽어 위협이 되지 못하는 단종과 엄흥도를 적극적으로 굳이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고 목숨걸고 지키고 지켜서 단종의 무덤은 오늘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 예수는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여 3년의 시간을 보낸 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그리고는 3일만에 부활하시고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사역을 완성하셨다. 믿기만 하면 우리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신학적인 고백을 차치하고서라도 사람들은 의심한다. 예수가 실존 인물이냐고?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이 사실이냐구? 그리고 3일만에 부활한 것이 사실이냐구 의심하곤 한다.
- 성경에 써 있다고 하면 이렇게 말한다. 성경에 예수님의 행적이 기록된 게 그의 사후 대략 30년은 지난 후라고 하는데 믿을 수 있냐고도 한다. 그 30년의 공백을 가진 기록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도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예수라는 신의 만남은 일평생 기억하고도 남을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놀라운 인물과의 만남은 쉽게 잊혀 질 기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3일 전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 지와 같은 수준의 기억력과는 차원이 다른 기억력이 작동한 사건이다.
- 더 나아가 실제로 오늘날 유대인들의 암기식 교육에서도 보이지만, 성령의 역사라는 신학적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그 당시 암기력은 현대인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뛰어났다. 단종 노산군의 시신의 묘를 대대로 구전하듯 예수의 말씀과 기적과 부활이라는 이 놀라운 사건은 그 당시 생존했던 제자들의 증언과 더불어 생생히 전달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덧붙여 초기 기독교인들은 매주 모여 예배를 드리며 성만찬과 주기도문을 실천하고 외우면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반복하고 반복하며 전승했다. 그러한 입으로 입으로 전해진 부활의 소식이 수많은 증언들의 고백과 더불어 성경에 담긴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다름 아닌 “증인들의 기록” 나를 향한 신의 놀라운 사랑을 담은 증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처음에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1-8절만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을 일깨워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 복음을 전해 받았으며, 또한 그 안에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해드린 말씀을 헛되이 믿지 않고, 그것을 굳게 잡고 있으면, 그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도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3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5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6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7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 이런 증언의 소리를 기억하며 기독교인들은 예배라는 의식과 예식을 통해 부활의 사건을 기억하며 증언하며 살게 되었다. 어떤 분은 이런 부활축하예배가 형식적이다라고 할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종교 의식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바쁘다는 이유 등으로 잊혀가던 부활의 삶,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다시 기억해내며 좌표를 점검하게 되는 것이다.
- 제 평생 같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2번이나 본 것은 이 “왕과 사는 남자”가 현재로는 유일하다. 그래서 단종과 영월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서도 더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단종의 죽음을 알고 있던 영월 사람들은 대대로 몰래 몰래 그를 위한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엄흥도의 공도 인정되어 200 여년이 지나 복권이 되고 영월 엄씨에 대한 혜택도 이뤄졌다고 한다.
저도 영월 엄씨가 참 귀한 자손이라는 생각이 들어 보답하는 마음으로 제가 가르치는 수업 중에 엄씨가 있으면 1점이라고 더 주겠다고 공포를 했다. 그런데 약 250명 수강생 중에 엄씨가 하나도 없어서 실행하지 못할 것 같다. 영월 엄씨에 대한 감사도 이리 유행을 하는데 인류를 향한 예수를 향한 증언과 감사를 어찌 멈출 수 있을까 자문하여 본다.
- 20절의 증언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셔서 잠든 모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앞서 가신 분 중에 천국가면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예수 따라 한사람씩 한사람씩 다시 살아난다는 증언이다. 그리고 각각 제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증언한다. 결국 나의 차례도 온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하여 있을 때 그리스도가 그러하셨듯, 우리도 다시 부활한다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으로 말마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온다는 이 아름다운 증언의 기록을 우리 가슴에도 담길 바란다. 그리하여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말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며, 어둠 가운데 무너지지 말고 빛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 “빛을 열다”는 계명의 이름처럼 우리의 처소와 우리의 가족과 조국과 온누리에 부활의 빛을 전하며 소개하며 증언하는 우리 모든 계명공동체가 되길 소원한다. 전쟁이 그치고 평화와 화평의 은혜가 온누리에 가득하길 기원한다. 여러분의 일터와 학교와 병실과 가정에 어둠과 절망을 이기고 빛과 소망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가 가득하길 축복한다. 아멘
하나님,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찬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의 놀라운 출생과 사역과 죽음과 부활의 증언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도 빛을 여는 계명인으로서 이 놀라운 사실의 증인으로 서게 하시고 이 기쁨의 증언들이 계속 이어져 전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을 통해 이 예수의 부활의 사건과 효력이 나의 삶에 이뤄지게 하시고 온누리에도 펴지게 하사 전쟁과 죽음과 공포의 자리에 평화와 생명과 평안이 대신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