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31 아침기도회- 비우며 사는 삶 (빌 2:6-11)
- 법정 스님이 쓴 책 [무소유] 안에는 본래무일물이라는 소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산골의 외딴 암자에 밤손님이 내방했다. 마침 밤잠이 없는 노스님이 정랑 즉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인기척을 들었다. 웬 사람이 지게에 짐을 지워놓고 일어나려다가 말고 일어나려다 말고 하면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뒤주에서 쌀을 한 가마 잔뜩 퍼내긴 했지만 힘이 부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노스님은 지게 뒤로 돌아가 도둑이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 지그시 밀어주었다. 겨우 일어난 도둑이 힐끗 돌아보았다. “아무 소리 말고 지고 내려가게.” 노스님은 밤손님에게 나직이 타일렀다. 이튿날 아침, 스님들은 간밤에 도둑이 들었었다고 야단이었다. 그러나 노스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에게는 잃어버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담긴 글의 소제목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뜻은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즉 만물은 다 비어 있고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 여러분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던 고 삼성 회장 이건희 씨 명함을 본 적이 있는가? 거기에는 보시다시피 삼성의 마크와 chairman이라는 호칭과 이건희의 영문 싸인이 다다. 여기에는 이메일 주소도, 전화번호도, 회사 주소도 아무 것도 없다. 이렇게 텅빈 비움의 극치인 명함은 보기 드물 것이다. 만약에 여러분이 명함을 이렇게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주면 주고도 욕먹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 이건희는 가능했던 것이다. 그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고 그의 위치가 어떠한가를 알기에 그 이름만으로 명함이 되었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그의 명함은 본래무일물 즉 아무 것도 실체가 없기에 비운 명함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의 비움이라고 보는 것이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오늘 본문은 기독교에 그리스도의 ‘자기비움’ 케노시스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이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철저히 낮아지고 철저히 비운 것을 보여준다. 이 비움도 아무런 실체가 없기에 비운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철저한 비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케노시스는 충만함을 가진 존재가 타인을 위해 스스로 그 특권을 내려놓는 적극적인 행위인 것이다.
- 당연하듯 어른은 갓난 아이를 다룰 때 최소한의 힘으로 다룬다. 인생의 쓴맛을 조기에 배워야 한다고 공놀이를 하면서 풀파워로 유치원생에게 공을 던지는 선생님은 없다. 신은 어디에도 계실 수 있는 존재인데 인류의 죄를 해결하고자 스스로 제한되고 연약한 인간의 한 몸에 갇히셨다. 그리고 철처히 인간으로 사시다 인간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면서 십자가에 달려 인류의 죄를 대신한 것이다.
- 이 비움의 모습은 인간에게 반대로 적용될 수 있다. 즉, 내가 비우면 그리스도로 채워진다.
- 1988년 시인과 촌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하덕규 씨가 작사작곡한 노래로 “가시나무”라는 노래가 있다. 참고로 그는 나중에 목사 안수를 받고 사역했다.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그 가사 첫 글은 비워내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 이번 주간은 전세계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하게 지키는 고난주간이다. 주님이 나를 위해 나의 죄를 대신해 돌아가신 죽음과 거기에 이르는 고난을 묵상하는 주간이다. 그리고 이 주간을 통해 조금이나마 우리 안에 가득한 가시나무를 제거하고 헛된 바람을 버리고 비우기를 기도한다. 즉 비움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그 비움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자 예수 그리스도의 채움으로 완성되길 기도하는 것이다. 이 기간이나마 우리 인간이 얼마나 헛된 바람과 욕심으로 채우고 채우고 뺏고 뺏으려 하는지 되돌아보면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기를 원한다.
- 1960년 작으로 알랭 들롱이라는 당대 최고 미남 배우가 주연했던 영화로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플랭 솔레이) 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다. 주인공 톰 리플리는 가난한 청년이었다. 그는 망망대해 요트 위에서 질투하던 부자청년 필립을 죽인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눈치 챈 친구마저도 죽인다. 그리고 그는 필립인 척 행동하게 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심리학 용어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고 하지만 저는 이 영화 제목이 참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 망망대해 누구도 모르게 살인을 했다. 누가 알겠는가? 바다에 던지면 시체도 찾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 바다 위 살인 아닌가? 그러나 태양은 그것을 보고 있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태양은 그렇게 가득히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톰이 필립의 시계로 채우고, 필립의 타자기, 여권 필적을 흉내내어 다 가진 것 같았지만, 결국 그의 살인은 들통이 난다. 불법으로 모든 것을 채우려고 했던 인간은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이다. 채우고 싶은 욕심은 아이러니하게 비움이라는 슬픔으로 끝을 낸다. 천체의 구조 상 태양이 지구를 비추지 않은 적이 없다. 다만 내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 고난 주간, 종교를 떠나서 우리의 그릇된 채움과 욕심은 결국 비워져 버린다는 종교적 진리를 묵상하길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내가 비울 때 하나님이 역사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채워짐을 고백하는 한 주가 되길 축복한다.
하나님, 나를 위해 낮고 낮은 이 땅에 작고 작은 한 인간으로 비우신 주님을 묵상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신이 비움으로 이루신 구원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늘 주님을 묵상하며 헛된 바람과 채움과 욕심을 비우고 주님으로 채워 주님 주신 힘으로 더 많은 것을 누리며 고백하며 복되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위해 비우시고 죽음을 택하신 예수님의 그 놀라운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