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곳과 학교가 거리가 있었지만, 미국에서 드물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경전철을 타고 강을 건너서 그곳의 지하철을 타면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뉴저지 주에서 필라델피아라는 도시로 왔다 갔다 했다. 흥미로운 것은 뉴저지 주의 patco라고 불리는 경전철에는 백인 등이 주로 많이 탔고, 필라델피아 지하철에는 흑인들이 주로 많이 탔다. 필라델피아라는 대도시로 출퇴근을 하는 백인들이 많았다고 보면 되겠다. 출퇴근 시간이면 역시 자리가 부족하기 마련인데 경전철이라 사이즈도 작아서 더 가득차곤 했다.다행히 제가 타는 곳은 종점과 가까워서 앉아갈 수 있었다.
어디나 그렇듯 어떤 역에서 사람들이 막 몰려탈 때가 있지 않나? 다는 아니지만, 그럴 때 제 옆자리가 거의 마지막에 차는 것을 경험하곤 했다. 뭐 굳이 나쁜 쪽으로 해석하지 않고 평가해 보자면, 자기와 생김새도 다른 사람 옆에 앉는 데에는 다소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존재를 구별하고 낯설어 하는 법인 것이다. 요즘 야구 좋아하시는 분은 한국팀이 WBC 8강에 진출했다고 좋아한다. 그런데 거기에 이름도 낯설고 생긴 것도 다른 사람이 한국 선수로 뛴다. 엄마가 한국사람인 선수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혼혈인들이 우리가 볼 때도 다르게 생겼다고 보지만, 백인 등의 입장에서 봐도 그들은 그들과 다르게 생겼다고 본다. 그들은 그렇게 양쪽에서 구별을 당한다.
오늘 본문은 종교적인 이유로 차별을 받았던 이방인 고넬료가 하나님의 한 백성으로 받아들여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유대인 전통에 충실했던 베드로는 이탈리아 사람 고넬료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부정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더욱 힘들고 하지 말아야 할 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환상을 보여주면서 더러운 것은 불결한 음식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환상을 통해 베드로는 고넬료를 방문하고 쉽게 말해 그를 축복해주었다.
학교에서 신앙생활할 때 고넬료 같은 존재를 만나게 된다. 그를 보고 진짜 성경의 고넬료처럼 경건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은 존재라고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저를 보고도 그럴 수 있다. 자신의 기준에 벗어나는 목사. 그런데 변호하자면 저는 원래 그랬다.
제 아내가 저를 좋아한 이유가 일반적인 목사와 달라서였다고 말하곤 한다. 여하튼 내 기준에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기독교인이라도 가짜인듯한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골라내면 신앙생활은 교회 안에서 밖에 못하게 될 지 모른다. 직장에서의 상황은 교회라는 공간과 다르다는 점을 늘 기억하고 상대방의 기준과 잣대를 넓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 잣대로 나도 평가당할 수 있다. “오죽하면 그럴까?” 오히려 측은지심으로 서로를 위해 오히려 기도해 주는 게 필요하다.
일전에도 얼핏 말씀드린 시인이자 이제는 뉴저지찬양교회에서 은퇴하신 허봉기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다. 어느 교회나 목사님이 바뀌거나 하면 마음에 안드는 교인들이 있기 마련 아니겠는가? 허목사님이 초기에 부임했을 때에도 그런 분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런 분에게 허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던 것을 듣고 그분이 바뀌게 되었다는 거다. 뭐라 그랬냐면 “아무개 님, 저 때문에 예수 믿는 재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이 가슴에 깊이 닿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분은 그 말대로 정말 그후로 목사님과 잘 지내면서 예수 믿는 재미를 잃지 않으며 신앙생활을 했다고 한다. 즉, 예수 믿는 재미를 잃게 하는 것을 막고 버리는 노력을 했다는 말이 되겠다.
한편, 그렇다면 직장 신우회나 교수선교회는 동호회처럼 무한히 넓어져야 할까? 교회 안 다녀도 심지어 다른 불자도 주님의 사랑으로 품는 그런 조직까지 가야 쿨한 걸까? 그렇지 않다. 아니 그러면 안 된다.일전에 제가 인용했던 [신을 찾는 뇌]라는 책의 마지막 결론부에도 이런 대답을 한다. 이런 것을 세속적 종교라고 하는데 초월적 믿음도 없고 그저 인류애적인 모임을 종교라고 부르는 인본주의적 종교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알고보면 환경운동도, 뉴에이지도, 공산주의도 그런 종교적 시도와 연관지을 수 있다. 다 망했다는 거다. 인간적으로 쿨해 보일지 몰라도 “종교”여야지, 종교 같은 종교는 종교를 절대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결론짓는다: “간단히 말해 인간 사회에서 종교를 대체할 어떤 것이 있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종교의 내용은 장기적으로 분명히 변화하겠지만, 좋든 싫든 그것은 우리와 함께 남을 가능성이 크다.”학자의 입장이라 이렇게 말한 거지만, 제가 아는 한 좀 제대로 안다는 분 중에 종교가 없어지고 사라진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교수선교회는 하나님 아버지를 창조주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믿는 이들의 그룹이 중심이 되어 지금처럼 다양한 칼라와 모습을 가진 사람이 모이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시야는 넓히고 포용력은 키우되, 초점은 변함없이 하나님께 오직 주님께 맞추고 그분의 손과 발이 되어 이름 그대로 선교에 앞장서는 우리 공동체가 될 때, 우리 모두가 은퇴해도 여전히 부흥하는 공동체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도 시야와 포용력은 넓히되 변함없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며 나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앞장서고 섬기길 바란다.그렇게 할 때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은 고넬료처럼 여러분을 통해 은혜받고 치유받고 성장하고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은혜가 우리 공동체 가운데 가득하길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