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기도회 251202 기다림의 기쁨(요3:16-17)
- 여러분도 개인 차가 있겠지만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기다리면서 그날이 되면 기대하게 되는 경험이 있었으리라 본다. 저는 최근에 “신인감독 김연경”이라는 배구 관련 프로그램을 재밌게 봤다. 주일이 되면 주일에 교회에 가서도 기쁘겠지만 교회에 갔다 오면 더 기뻤던 적도 있다. 왜냐하면 그 프로가 주일 밤에 방영을 했기 때문이다.
- 저녁 밥 먹고 그 프로를 보고 선수들의 노력과 결과에 같이 박수를 보내면서 재미있게 봤다. 그런데 지지난 주인가 9회로 마감을 했다. 주일날 기다리면서 볼 프로가 없어져서 마음이 조금 우울해졌다.
오늘 주제가 기다림이다 보니 기다리다 우울해졌던 기억이 또 났다. 저는 휴대폰은 물론 이거니와 삐삐라고 불리던 pager도 없던 때 청춘을 보낸 적이 있다. 서울 시청역 2번 출구에서인가 만나자고 친구와 약속을 하고 집을 나선 적이 있다. 반월당역도 그런 것 같던데 지하철 시청역은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다소 복잡한 역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만해도 구역 설정 통일이 되지 않아 출구의 번호가 1호선과 2호선 각각으로 붙여졌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 저는 1호선 2번 출구, 그 친구는 2호선 1번 출구에서 기다리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오지 않는 상대에 대해 오해하면서 못 만났던 적이 있다.
-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기다리는 것 같다. 배달 음식을 기다리고, 제대하기를 손 꼽는 기다리는 것처럼 좋은 기다림도 있겠고, 극단적인 예이겠지만 사형수가 사형집행날을 기다리는 기다림은 너무나 괴로운 기다림도 있을 것이다.
- 그런 점에서 이왕 기다리는 것이라면 좋은 기다림이면 좋겠고 그런 기다림 끝에 서로 만날 수 있는 기다림이면 좋겠고 그런 기다림의 대상이 9주만에 방영이 끝나 듯 너무 빨리 사그러지는 이별의 기다림이 아니면 좋겠다.
그 대신 기다림이 영원한 만남으로 이어지고, 영원한 행복으로 연결되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기독교에서는 지난 주간부터 대림절이라고 해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특별한 4주의 기간을 기념하고 있다. 예수님이 나를 포함한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다고 하니 종교를 떠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비록 의도하지는 않겠지만 성탄일 즈음에 모두가 성탄절의 분위기를 누리고 나누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 반대로도 생각해 본다. 이 땅에 인간으로 오기로 결심하신 예수님도 우리 인간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았을까? 긴 기다림 끝에, 편지로 주고받듯, 간접적으로만 인간과 소통하던 예수님이 드디어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지구 상의 인간을 드디어 만나는 건 기대와 설렘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비록 고통의 시간이 앞에 놓여 있었지만 그것보다 여러분을 만나는 것이 고통을 이길만한 행복이 아니었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오늘 본문에서 독생자가 오신 이유를 밝히고 있다. 나에게 신이 인간으로 오신 이유가 있다는 건데 그건 바로 영생의 기쁨을 알게 하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 쉽게 말해 이전에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알지 못하던, “극강의 즐거움과 행복”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다. 얼마나 예수님 입장에서는 그것을 하루라도 빨리 알려주려고 설레고 기다렸을까?
- 전국민의 손에 휴대폰이 들리게 된 즈음, 저는 군에 입대하였다. 장교신분이라 휴대폰 통화는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민간인만큼 만남이 자유롭지는 못했던 때이다. 그러던 때, 한 친구를 알게 되어 휴대폰으로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다가 드디어 직접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서울 현대백화점 신촌점 2월 22일. 그 친구를 처음 보는데 뒤에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 그날 냉면 같이 먹고 지금까지 쭉 같이 살고 있다. 그리고 별일이 있어도 계속 같이 살 것 같다.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라고 한다:
“사람을 기다려주는 것은 그 안의 고민이나 슬픔까지 공유하는 길이다. 그것은 관심에서 출발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는 마음이다.”
비록 드라마 대사라고 하지만 마치 그것은 신이 나를 만나러 오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말로 들린다. 사람을 기다려주는 것은 그 안의 고민이나 슬픔까지 공유하는 길이다. 그것은 관심에서 출발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주는 마음이다.
-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절기를 맞아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이와 같은 존재로 임하길 기도해 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러분도 작은 예수가 되어 여러분이 만나는 대상이 여러분을 통해 위로를 얻고 혼자가 아님을 깨달아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이유요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싶은 뜻이 아니었을까 대림절을 맞아 생각해 본다. 아멘
하나님 우리를 만나고자 기다리고 기다리시다가 결국에야 만나러 오시는 그 마음을 우리도 헤아려 깨닫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고민과 슬픔까지 공유하시고자 우리를 홀로 두지 않게 하시고자 오시는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게 우리도 만남의 장소에 나가는 용기를 주시고, 그 만남에 영원한 이별이 없음을 담대히 믿는 마음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