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23 교수선교회 예배 / 왕상19:11-12 침묵의 소리
- 요즘은 아이들과 따로 떨어져 지내서 못하는 편이지만, 밤에 온가족이 모여서 다 같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기도를 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편이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그렇게 모여서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해서 자정을 넘기기도 했다. 그런데 서로 피곤한 날이면 간단히 기도를 하게 된다. 아이들은 상태와 상관없이 언제나 간단히 기도한다. 레파토리를 바꾸라고 할 정도도 심플하면서도 반복적이다. 어디나 그렇듯 엄마의 기도는 길고 더 간절하다. 짧게 끝났으면 하는 마음에 자의반 타의반 아내에게 부탁한다. 짧게 길지 않은 문장으로 기도를 해 주십사하고 말이다. 그런데 기도가 그렇게 뜻대로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 피곤할 때는 그렇게 쭉 이어지는 기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놓칠 때가 있더이다.
-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하나님은 한국어, 영어 독어, 스페인어 등 전세계의 언어를 듣고 응답하신다. 그리고 오래 전에는 그런 말도 다 달랐을 것이다. 그렇게 봤을 때 침묵이 오히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수천년의 시대와 수많은 언어를 넘어 변함없이 소통하는 도구가 되어 왔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 영적으로도 침묵은 언제나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성숙하는 시간이 되어왔다.
- 17세기에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영국의 국교회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1661년부터 1672년까치 무려 12년 간 감옥에 갇혀 있었다. 촛불 하나 없는 곳에서 밤이 되면 정말 문자 그대로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 12년을 보낸 것이다. 1672년 찰스 2세의 종교관용정책으로 풀려났고, 풀려난 후 한 독립교회에서 시무하며 설교를 하게 되었다.
- 그런데 1년 후 의회에서 이 정책을 반대하고 철회하게 되었다. 그리고 존 번연은 다시 감옥에 들어간다. 12년의 감옥생활도 힘들었지만 다시 들어가는 일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때 무너진다. 12년이 길지만 믿음으로 잘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응답이라 생각하고 행복을 생각하고 있는데 다시 고난이 찾아오면 와르륵 무너지기 쉬운 것이다.
- 존번연이 천로역정이라는 유명한 신앙서적을 쓴 것은 오히려 12년의 긴 감옥 생활이 아니라 두번째의 감옥생활 때였다고 한다. 가장 나락에 떨어진 때 그는 가장 영적으로 깊은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하겠다.
- 고난이라는 단어를 12년의 감옥생활과 1년 후의 감옥생활 중 더 어울리는 쪽에 적용해 보라면 오히려 후자 쪽이 아닐까 한다. 참고로 재투옥된 후 다행히 6개월만에 나왔다고 한다. 그런 고난과 같은 시간에 그런 깊은 침묵에 존 번연은 더 깊은 묵상을 하게 되었고 세대를 초월하여 읽히는 위대한 책을 쓰게 된 것이다.
- 오늘 본문에서도 인간의 기대와 다른 하나님의 대답의 시간과 방법을 볼 수 있다.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그 당시 악한 왕 아합의 칼을 피해 피신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대목이다. 목숨 걸고 하나님의 일을 하며 아합, 이세벨이라는 악한 왕과 왕비에게 대항했던 그였다.
- 어떤 하나님을 기대했을까? 크고 강한 바람처럼 하나님이 임하시고 답을 주시겠지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없었다. 바람 후 지진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임재는 없었다. 지진 후 불 가운데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다.
- 바람과 지진, 불과 같이 임하고 응답해 주실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대와 달리 세미한 음성으로 답을 주셨다. 왜 나 혼자 고생시키느냐는 듯한 그의 외침에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사람 7000명을 남겨두었다는 그 유명한 대답이 바로 이 세미한 음성으로 전달되었다.
- 침묵의 시간, 고요의 시간을 마련하여야 한다.
- 보통 갑과 을의 관계, 총장님과 일반 교수, 또 교수님과 학생의 관계에서 보면 을쪽에서 말을 많이한다. 그게 예의이고 자연스럽다. 만약에 여러분의 여러분과 대화를 하거나 글을 주고 받는데 그 학생의 말이나 카톡이 짧으면 좀 불편해질 수 있다. 길게 설명했는데 “네” “좋네요” “Oㅋ” 이렇게 글을 쓰면 좀 당황하게 될 것 같다. 총장님과 단 둘이 있거나 그러면 오디오가 비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도 하지 않는가? 무슨 말이든 해야 적막을 이길 수 있다.
- 그런데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한없는 침묵이 한없는 평화로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소리를 계속한다고 해도 침묵 속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침묵을 오히려 많이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 확실히 하나님은 여느 인간과 다르다. 그분은 갑질하지 않는 영원한 젠틀맨이심에 틀림이 없다.
- 비즈니스(business)는 바쁘다는 의미를 뜻하는 비지(busy)에서 온다. 여러분의 많은 활동은 비즈니스 계열의 것이고 그것은 언제나 나를 바쁘게 한다. 침묵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잠시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꼭 놓치지 말고 간직하길 바란다. 오늘도 나의 거룩한 침묵의 시간을 통해 변함없이 속삭이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엘리야처럼 힘있게 달려가서 비즈니스를 처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길 축복한다. amen
하나님 우리에게 늘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비지하다는 이유로 비지니스한다는 이유로 힘겹게 달려가고 있다면 잠시 멈춰서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시간을 통해 바람보다도 지진보다도 불보다도 힘있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과 인도하심으로 회복되고 충전되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