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29
고후 5:1-2 큰 그림을 그립시다
- 한국에서 목사님이 되려면 일반적으로 최소 30살이 돼야 하는데 군목은 예외의 경우이다. 군대로 목사로 가게 되는 경우에는 20대에도 목사 안수를 허락한다. 제가 그런 경우였는데 그렇게 어린 나이지만 그 나이에 맞지 않는 다양한 경험을 한다. 신랑이 저보다 약 3살 아래인 커플의 주례도 선 적 있고, 내일 다른 부대로 전근을 간다고 그날 밤 송별파티를 끝내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차에 치여 사망한 소령의 장례도 치룬 적 있다.
- 그렇게 거의 5년의 시간을 보내고 말년을 김해기지교회에서 보내게 되었다. 군목생활 말년 차에 김해기지교회에서 있던 일이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안수집사님의 심방 요청이 들어왔다. 그분도 중령으로 전역을 앞두고 말년 군생활을 보내는 분이셨는데 저에게 부대 근처 친구 어머니가 위독하시다고 같이 병문안 겸 복음을 전하러 같이 가자고 하셨다.
- 전혀 모르는 분 병문안이나 기도하러 다닌 적이 꽤 있어 흔쾌히 그 심방에 응했다. 그렇게 해서 그 집사님의 안내로 그 집사님의 친구 어머니 그러니까 쉽게 말해 할머니가 누워 계시는 집으로 갔다.
- 가서 보니 바로 돌아가실 정도는 아닌 것 같았는데 문제는 말귀가 어둡고 의사표현이 자유롭지 않아 보이는 상태였다. 참고로 그 중령 집사님은 열정이 좀 대단한 분이셨다. 저에게 요구하는 분위기는 설교를 하든, 전도를 하든, 내일 제대를 하더라도 좀더 뜨겁게, 좀 더 화끈하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취지를 강조하셨던 분이다.
그런 분하고 같이 갔으니 제가 나름 뜨겁게 기도하고 무슨 말이라도 전해야하지 않겠는가? 왜 목사님들이 주로 하는 말씀있지 않는가? “예수님을 믿어야 죄사함을 받고 천국 갑니다. 오늘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생의 소망을 가지시겠습니까?” 이런 말을 해야 하고 또 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은데 할머니 상태를 보니까 예수님이 누군지 죄가 무언지, 천국이 무언지 알아들을 수 있는 상태나 이해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 그래서 제가 대뜸 이야기 하나를 해 드렸다. 아마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다. 할머니, 하루살이 아세요? 안다는 거다. 할머니 모기도 알아요? 안다고 표한다. 하루살이랑 모기랑 어느날 아침부터 만나서 신나게 재미있게 놀다보니까 날이 어두워졌어요. 그래서 모기가 하루살이한테 말했대요:”하루살이야 내일 만나서 또 놀자!” 그러자 하루살이가 놀라면서 “내일이 뭐야?” 하루살이는 말 그대로 하루만 사니까 내일이 뭔지 몰랐던 거예요. 모기도 황당해하면서 “내일이 내일이지 내일을 몰라?” 그렇게 말했대요.
- “할머니, 하루살이가 내일을 모른다고 내일이 없는 거 아니잖아요?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안 믿는다고 천국을 모른다고 해서 천국이 없는 게 아니예요. 할머니 예수님 믿으면 천국에 가는 거예요. 예수님 믿고 천국 가세요.”
- 기억이 흐릿해서 할머니가 아멘을 했는지 안 했는 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대신 옆에서 제 말을 다 듣고 저를 쳐다본 그 “열정 넘치는 중령 집사님”의 얼굴이 상대적으로 더 기억이 난다. 감동받은 표정이 아니라 “뭐 더 없나요?” 이게 다예요 하는 표정이었다. 저도 눈으로 말했다. 네 다예요. 여러분이 저였다면 좀 더 달랐을 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당시 그것이 참 좋은 접근이 아니었나 여전히 생각하면서 산다.
- 오늘 본문도 알고 보면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난 후의 상황을 이야기해 준다. 다른 모두가 내일을 믿지 않더라도 기독교인은 내일을 믿는 것처럼 기독교인이란 다름 아닌 이 세상의 집이 무너지면 그것이 끝이 아니라 하늘에 하나님이 지은 영원한 집이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이다. 즉,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시간의 관점이 매우 긴 존재가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다.
- 저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비되는 것 같아 드라마를 잘 안 보는데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로 김혜자님께서 출연하는 “천국보다 아름다운” 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역시 잘 안 봐서 자세히는 모르나 천국에 가서 이뤄지는 에피소드를 그리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또 하도 재미있다고 해서 제가 지금 보기 시작한 드라마로 “폭삭 속았수다” 라는 드라마가 있다. 유명 목사님도 보라고 강권할 정도라 보고 있는데, 보니까 거의 인생을 담은 드라마이다.
-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드라마인데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참으로 칭송받는 인물이 “양관식”이라는 사람이다. 제주도 출신의 여인 “애순이”를 끝까지 사랑하면서 지켜주면서 동행하는 멋진 남자로 그려지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양관식과 같은 남편과 배우자를 꿈꾼다는 소리도 듣는다. 제가 한 2/3 정도 봤는데 끝에는 어떤 지 모르겠으나 현재까지는 그러고도 남을 멋진 남편이자 남자로 그려지고 있다.
- 이 드라마를 다 본 아내에게 제가 농담삼아 이렇게 말했다: “양관식하고 나하고 그래도 공통점으로 이름에 “관”자가 들어가지 않는가? 그러니까 어느 정도 닮은 부분이 있지 않는가? 관 자 들어간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많다.” 이렇게 이야기했다가 좀 과장해서 그날 저녁 못 먹고 집에서 쫓겨날 뻔했다.
- 솔직히 현실의 한국 남자들은 이 이세상에서 양관식처럼 스위트하고 의리있고 변함없는 남자가 되지는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죄송하지만 거의 99%인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그런 모습이 옳은 모습이라고 좌표 찍고 더디지만 그렇게 노력할 때 설령 이 세상에서는 완성이 되지 못할 지 몰라도 천국에서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모습이 기독교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꿈꾸며 지내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천국에 가면 “천지 삐까리”에 양관식이 있을 것이다. 양관식 천국이라는 말이 되겠다.
드라마를 안 보신 분도 있을텐데 제가 너무 엉뚱한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아 죄송하다. 그러나 제가 나누고 싶은 말씀은 이것이다. 기독교인은 현실의 아쉬움과 어려움 장벽 앞에 멈춰서지 않는 존재라는 말씀이다. “이번 생은 글렀다”는 말도 적절하지 않다. 지난 번 월남 이상재 선생님의 말처럼 기독교인은 한번 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존재이기에 그렇다.
- 여러분이 처한 현실, 시간, 환경이 녹록지 않을 수 있고 걱정이 여러분의 어깨를 짓누를 수도 있을 지 모르겠다. 우리 학교가 나아가는 길, 우리 학교가 처해 있는 현실 녹록지 않을 수 있고 걱정하면 걱정이 계속 짓누르는 부분이 있을 지 모르겠다.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은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나아가는 존재라는 관점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을 때 천국과 같은 변화와 기적을 현실로 누리고 사는 존재가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 현실은 [폭삭 속았수다]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학씨 아저씨”일 지 모르나 우리가 현실의 어려움에 주저 앉지 않고 계속 나아갈 때 우리 모두는 결국 “양관식”으로 애순이와 영원히 행복하게 살 때가 오고야 만다. 현실이 어려움에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더욱 큰 그림을 그려 나가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계명공동체가 되길 축원한다. 아멘
기도: 하나님 우리가 현실의 어려움에 현재의 모습이 다라고 지래 절망하거나 포기 하지 않게 하여 주시길 소원합니다. 천국의 소망을 안고 걸어간 많은 신앙의 선배처럼 소망의 사과나무를 심고 더 나은 시간을 기대하며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우리들의 시간이 되게 복내려 주시옵소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