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은 모인다. 그 모임은 생각 외로 다양할 수 있다. 도둑들도 하나님 도둑질해도 걸리지 않게 해 주세요 기도할 수 있고 시험을 앞 두고 컨닝 페이퍼를 만들고는 하나님 내일 시험 잘 보게 해 주세요. 감독관에게 걸리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런 때도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계실까? 계신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맥락은 격려와 힘의 의미라면 그런 상황 속의 함께하심은 안타까움, 슬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 링컨이 남북전쟁 당시 기도했다는 내용을 떠올리게 된다. 링컨이 속해 있던 북군들이 하나님이 북군의 편이 되어달라고 기도하길 원한다는 소리에 오히려 하나님이 북군의 편이 되는 게 아니라 북군이 하나님의 편에 서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고 말했던 것 아닌가?
얼마 전 은퇴를 얼마 안 앞둔 한 목사님 부부와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하다가 전라도교회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감정이야 전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교회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또 그런 노력을 늘 하고 있다. 그런데 그분들은 경상도 교회는 하나님을 잘 믿는데 전라도교회는 숫자만 많지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고 심하게 비판을 하더라.
제가 그래서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화제를 돌렸지만 씁쓸했다. 우리가 경상도 교회가 다른 지역을 비판할 만큼 제대로 믿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왜 전국에서 기독교신자 비율이 제일 낮을까? 우리도 역시 잘 못 믿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그저 죄인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함이 옳지 않을까? 그저 북군이 옳고 남군이 틀렸다가 아니듯이 우리가 늘 하나님 편에 서는가를 물어보는 겸손의 자세가 훌륭한 신앙인의 자세라는 생각을 한다.
QT 중에 렘브란트의 십자가 세우기 라는 그림에 관한 일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 그림은 제목 답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세우는 장면이 담겨 있는데 그 십자가를 돕는 주변 사람에는 누가 봐도 화가 복장을 한 사람이 들어가 있다.그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신데 그 우리에는 바로 렘브란트 자신도 들어가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그림이라는 해석을 한다.
그런데 그 뒤로 백마 탄 사람이 또 그려져 있는데 흥미롭게도 그 사람 역시 렘브란트를 닮았다는 것이다.그 사람은 그림 보는 사람의 시선과 마주치게 그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람이 던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바로“당신도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라는 거라고 말한다.
우리모두 남을 비난하기에는 똑 같은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잘 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한가지 우리가 죄인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리면 교만해지기 쉽다는 생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즉, 죄인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가 겸손을 잃지 않을 것이고 그러한 연약함에 오히려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생각을 한다.
올해도 때때로 여러 일을 만날 때 최소한 우리가 죄인이었고 우리는 늘 부족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이 분명한 사실을 중심에 놓고 지낸다면 가장 강한 하나님께서 우리와 친히 함께하시며 우리를 위해 친히 일하실 것이다. 올 한해 하나님과 함께하는 은혜가 넘치길 축복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