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3 아침기도회- 함께하시는 하나님 마1:18-23
- 신승훈의 I believe 라는 곡의 작사가가 양재선이라는 분이다. 연애인 김진수의 부인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학교 동문의 동생이어서 그가 그렇게 뜨기 전에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그때 좀 더 친하게 지낼 걸 하는 생각을 한다. 여하튼 그렇게 뜨기 전에 안다고 그 언니로부터 건네받은 시집 하나 있다. 시집 제목이 길고 좀 이상해서 그 안의 시 하나 바로 소개하겠다.
- 제목 [엄한 사랑]
- “난 외출할 때, 문밖에서 립스틱을 칠해야 했고, 또 문 밖에서 지우고 들어와야 했다
- 이런 엄한 집안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 언젠가 밤늦게 초인종을 누른 날 현관문 밖에서 한 시간을 떨게 한 아버지가
- 콜록거리던 내 방문 밖에서 밤새도록 서성이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난 알게 되었다.
-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분과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분은 동일한 분이라는 것을”
- 가족의 모습 특히 엄하지만 속 깊은 아버지의 모습을 잘 그린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 지난 주간 학습성과 발표회를 열심히 참석했다. 그 중 기도순서를 맡아 [한국어문화과]에 참석했는데 그 중에 멕시코에서 온 다니엘라 학생이 가족이라는 제목의 짧은 수필을 낭독했다. 한국에 오기전까지 가족은 당연하게 같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제가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하니 손수 쓴 글을 저에게 전해 주었다.
- 그 중 한 대목을 소개하면 이렇다: "내가 멕시코에 살 때 가족은 고개만 돌리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존재였다. 내가 학교 학예회에서 춤을 출 때에 참석하여 웃으며 치던 아빠, 내가 첫사랑과 이별해서 펑펑 울 때에 옆에서 등을 토닥여 주며 위로해 주던 엄마…지금 한국에서는 고개를 돌려도 모두 볼 수가 없다. 같은 나무에서 자라난 잎사귀들은 시간이 흐르면 각자 지고 흩어진다.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이사 가버린 오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유학을 온 나, 그리고 나이들어 주름과 흰머리가 하나 둘씩 늘어가는 엄마 아빠까지 그렇게 같은 곳에서 자라난 가족들은 각자 지고 흩어진다."
- 저도 개인적으로 미국 서울 등으로 떨어져 지내고 있기에 더 감정이입이 되었다. 가족이 떨어져 살면 편하다고 하겠지만 그게 어찌 100% 진심이겠는가?
오늘 본문은 성탄을 맞아 예수님이 탄생하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이 태어나게 되는데 천사가 그의 아빠 엄마에게 나타나 아들 예수가 바로 구약 성경에서 예언한 임마누엘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친절하게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라고 알려 준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닉네임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 인간에게 오시는 이유가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함이라는 말씀이 된다. 즉, 앞서 소개한 주제로 바꿔 말하자면 예수님은 우리의 아빠이자 우리를 가족 삼아 주시고자 오신다는 말이 될 수 있다.
- 하나님 아버지는 때로 우리 인생의 아버지가 되어 우리가 밤늦게 들어와서 혼을 내기도 하지만 우리의 기침 소리를 듣고 밤새 서성거리시며 걱정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한국으로 미국으로 흩어져 살더라도 생각나는 존재이며 같이 지내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 지를 깨닫게 하는 분이시다.
- 한편 치위생과 학습성과 발표회에도 참가를 했다. 학과장님은 예정에도 없었지만 제가 나타났다고 즉석에서 기도를 요청했다. 나름 입사동기라고 보고 축복기도해줬다. 그 과에서는 4명으로 구성된 한 조가 발표를 하였다.
- 그 중의 김규리라는 학생이 발표하면서 PPT로 학과장님이 자주 하는 말씀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말이었다: “치과 위생사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직업이다. 늘 협력해야 하고 협조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어찌 치과 위생사만이겠는가? 제과 제빵, 간호, 선교, 호텔, 항공, 응급구조, 작업치료, 유아교육 어느 과에서 대상 없이, 상대방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함께해야 더 잘 살 수 있는 과이고 우리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 하나님이 굳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혼자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좀 격이 떨어지는 비유일지 모르나 제가 키우던 강아지가 7월 31일에 병으로 죽었다. 8살짜리였는데 대구의 가을 겨울도 경험하지 못하고 죽었다.
- 낮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아 홈카메라를 설치해서 그녀석의 동태를 살폈다. 죽기 며칠 전 홀로 거실에 누워 숨을 헐떡거리던 녀석의 영상을 보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혼자 참 많이 아파했다.
- 그러다 한국에 오래간만에 나온 아들이 미국으로 들어간다고 하여 아픈 그녀석을 아내 무릎에 앉히고 차를 타고 올라왔다. 덕분에 아니 본의 아니게 강아지까지 포함하여 온 가족이 다 모였다. 그리고 그 녀석은 아들이 미국으로 떠나는 날 새벽에 눈을 감았다. 물론 저의 상상이고 해석이지만, 말못하는 강아지도 가족과 고향이 그리웠지 않았을까? 그리고 가족의 품에서 그는 안식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 하나님이 볼 때 여러분은 우리집 강아지일 수 있다. 여러분은 아니라고 할 지 모르지만 그 분의 눈에는 안스러워 보일 수 있다. 아둥바둥 하는 모습이 참으로 눈물겹다고 보일 수 있다.
- 그런 점에서 저는 목사로서 좋은 가족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시기 위해 오신 분이시다. 심지어 육신의 아버지는 결함이 있고, 연약하고 한계가 있고 시한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하나님은 신이시기에 우리와 언제든 함께있으시며 우리와 언제나 대화할 수 있다.
- 신이시기에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 겨울 성탄의 시즌에 외롭다고 공허하다고 캐롤 볼륨, TV 볼륨 높일 수 있다. 그러면 고막만 상한다. 기분 낸다고 쇼핑하다 다음달 카드값 폭탄만 맞는다.
- 제가 다른 곳에서 말씀드린 게 있는데 미국성서협회의 2024년 보고서에 의하면 성경을 읽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외로움을 덜 탔다고 한다. 그 이유로 논리적 설명은 한계가 있겠지만, 기독교에서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 러브레터라고 말하는데 그런 데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함께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 임마누엘의 예수님을 기억하시며,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고 행복을 나누는 여러분이 되실 축복한다. 아멘
우리를 홀로 있게 하지 않기 위해 높고 높은 곳에서 낮고 낮은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아빠가 되어 주시고 때로 엄마처럼 형처럼 언니처럼 동생처럼 우리와 함께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를 영원한 가족으로 초청해 주신 주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도 그 초대에 응하고 행복 가득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