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1 아침기도회- 기도 못할 건 없습니다
마태복음 9:18-26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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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신학대학원 다닐 때 김진홍 목사님께서 신앙 사경회 강사로 오신 적이 있다. 그분께서 경기도 화성 남양만에서 두레마을을 일구면서 생겼던 일화를 소개해 준 적 있다.
한밤 중에 교인 중의 한 명이 긴급히 집으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유인즉슥 자기네 키우는 소가 아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와서 안수기도를 해 주시면 좋겠다고 청하러 왔다. 그분이 남양만에 두레마을을 세운 때가 1974년이니 그 당시 의료시설이나 교통시설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에 그 밤에 문을 연 동물병원도 없었을 것이고 있다해도 의사 선생님을 모셔오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 목사님께서 어둠을 뚫고 그 집을 찾아갔고 목사님은 그 커다란 소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제 기억이 맞다면 소 머리에 안수기도 한 것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 샤머니즘은 한국의 토속 종교로 꼽힌다. 그렇기에 한국의 개신교도 이런 샤머니즘의 정서를 수용하면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렇기에 한국의 개신교 안에는 “기복적인 모습이 강하다” 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김진홍 목사님의 안수 사건을 보고 어떤 이는 무슨 동물을 놓고 기도를 하냐고 비판적으로 말할 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여쭤보고 싶다. 여러분이 애지중지하는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아프다고 하면 그 동물을 위해서 기도할까? 그 동물을 위해서까지도 기도할까? 제가 나중에 기회되면 더 말씀을 나눌 수 있으리라 보는데 최근에 제가 키우는 8살짜리 개가 아팠다. 병원도 갔지만, 제가 한 일이 뭐냐면 아픈 부위에 손을 얹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 신학보다 앞서는 게 신앙이다. 중요한 건 비록 동물이지만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참 신은 하나님뿐이라는 생각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아프니까 하루는 목사님 부르고, 또 부처님 오신 날이 얼마 안 지났으니 스님의 법력이 클 것 같아 스님도 부르고 그러면 안 되는 거다. 그리고 목사님이 소를 고치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소만 나으면 교회를 끊는 게 아니라 소주인의 신앙을 위해 소까지도 기도해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 모든 사람은 기복적이다. 그렇기에 무엇이든 복을 구하고 기도하는 것은 틀리지 않다. 단, 여기저기 줄을 대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하는 게 중요하고,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믿고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병을 고쳐주든 안 고쳐주든 목적은 하나님이 모든 존재의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을 믿는 것이 궁극적 행복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핵심이라고 하겠다.
- 오늘 성경 본문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병이 나은 한 여인을 본다. 그녀는 12년 간 혈루증 즉 부정기적으로 하혈을 하는 그런 병을 앓고 있었다. 비평적으로 보는 사람은 예수님과의 실존적인 만남이 중요하지 옷자락 붙잡고 병 낫기를 기도하는 것은 기복적인 것이고 미신적인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러나 12년간 하혈을 한 사람의 고통은 어찌 우리가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고통과 불편함과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아픔과 간절함은 예수님의 옷자락이 아니라 예수님의 그림자를 붙잡고서라도 기도하게 만드는 것이다.
- 예수님은 그녀의 행동을 보고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말하며 구원을 선포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기복적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거기에 머물기를 원하시지도 않는다. 즉, 예수님은 그녀가 12년 간의 하혈을 멈추는 것에 만족하는 삶이 아니라 그로 인해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것을 알고 영생의 소망을 안고 살기를 원하신 것이다.
- 또 이어서 관리의 소녀가 죽은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잔다”라고 하자 사람들이 자신의 상식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비웃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상식을 이기고 그 소녀를 살리셨다. 예수님은 우리 상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분이라는 것이다. 아프면 예수님께 기도하길 바란다. 인간의 상식으로 지레 포기하지 말고 뭐든 기도하는 자가 중요하다. 어려움이 있으면 하나님께 어설픈 말이라도 기도하길 바란다.
- 기도의 공식이나 규칙 따로 있지 않다. 그냥 내뱉으면 하소연이고 넋두리이지만, 아무리 하소연이고 넋두리 같아도 하나님을 부르고 하는 외침은 그것마저도 기도가 되는 법이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도우심과 어루만지심을 경험하고 신앙을 갖게 되길 바랄 뿐이다.
- 제가 군목으로 부산 김해공항에 있는 공군부대, 김해기지교회 담임 목사로 섬긴 적이 있다. 준위되시는 안수집사님 가정이 있었다. 참 신실한 분이시고 장성한 두 딸까지 온 가족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던 분이다. 그런데 새벽기도 끝나고 그 분이 댁으로 돌아가지 않고 저를 기다리셨다.
- 무슨 일인가? 알고 봤더니 기아 쏘렌토 SUV 차량을 새로 뽑으신 거다. 부탁인즉슨 “ 차를 새로 뽑았는데 목사님께서 축복기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교회 앞마당에 은색 계열로 기억나는 멋진 차가 서 있었다.
- 순간 당황했다. 도대체 무슨 기도를 해야 할까? 앞 범퍼부터 뒤 범퍼까지 주님이 보호해 주사 교통사고가 나지 않고 설령 교통사고가 나도 탱크 같아서 온 가족을 보호해 달라고 해야 하나? 제가 그 분과 같이 차에 들어 앉았다.
- 그리고는 대략 이렇게 기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로운 차를 구매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 차를 타고 다니면서 이 차 안에서 참으로 좋은 이야기가 나눠지고 행복이 가득한 시간이 넘쳐나게 해 달라.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차가 되고 집사님 가족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 지금 생각해도 잘 한 기도 같다. 차를 사던 무엇을 사던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간구하는 그 집사님의 모습은 참으로 귀감 삼아 마땅하다. 그 마음이 있다면 우리의 어설픈 기도도 하나님은 기똥차게 알 들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 하나님께는 우리가 아뢰지 못할만큼의 큰 기도제목도 없고, 하나님 입장에서는 우리가 생각할 만큼 고상하고 고매한 기도제목도 없다. 그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아무리 큰 문제라도 하나님께 기도드리자. 하나님이 그 기도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 뭐든 기도만 하면 된다. 뭐든 기도하며 하나님과 친해지는 우리가 되길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