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4:5-14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걸다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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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시즌이 가까우면 정치인들은 서민들이 있을 만한 곳을 찾는다. 주로 많이 찾는 곳이 시장/종교시설 아닐까? 그리고 선거에 당선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은 시장을 향한 발걸음을 멈춘다.
어디에 낮고 힘든 사람이 있는 지 알지만 그들에게 그들은 표를 주는 사람이지 진정으로 사랑하거나 관심있는 대상은 아니라고 하겠다. 그렇기에 외국인 노동자 같은 사람은 웬만해서는 찾아가지 않는다. 그들이 서민들보다 더 힘들면 힘들겠지만 그들에게는 잘 안 간다. 이유는 뭘까? 그들에게는 선거권이 없어서 이지 않을까?
-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소외되고 외로운 한 사람을 찾아가는 예수님을 만난다.
- 지역은 사마리아라는 동네다. 사마리아는 예전에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지만 앗수르에게 멸망하면서 이방인의 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 앗수르는 강제 이주정책을 펴서 사마리아 사람은 다른 곳을 보내기도 하고 이방인을 사마리아로 강제 배치하기도 하였다. 그 후로도 이 지역은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순서대로 받았다. 한마디로 순수혈통과 믿음을 강조해왔던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 지역은 혼탁해진 지역이었다. 버려진 동네가 되었고 비난 받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예수님 당시에도 북부 갈릴리에서 남부 유다로 올 경우 중간에 있는 사마리아를 피해 뺑 둘러서 가는 게 일상이었다.
- 그런데 혈통적으로 유대인인 예수님이 유대인의 혈통을 가진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로 들어간 것이다.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 우물 가로 가게 되셨는데 그때 시간이 여섯시 요즘 시간으로 환산하자면 정오이다. 그런데 거기에 한 여인이 물을 길러 왔고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말을 거신다. 이 대목을 가지고 김복유라는 찬양사역자가 만든 노래가 있는데 제목이 “나는 사마리아여인에게 말을 건다”이다. 참고로 이 분을 우리학교 영상채플에 모시려고 지금 소통 중에 있다.
- 물이 필요하니까 우물가에 왔겠지만, 그 시간이 특이하다고 노래한다. 사막지역에서 정오의 날씨는 가장 덥고 힘든 시간 아니겠나? 그렇기에 그 시간에 그 동네 사람들은 집에서 쉰다. 그런데 그런 시간에 물을 길러 나온 거다. 이유는 뭘까? 이 여인은 5명의 남편이 있었고 지금은 또 다른 남자와 사는 형편이었다.
-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 천대받는 사마리아인인데 그 사마리아인 가운데서도 남편을 다섯이나 뒀어야 했을 정도로 기구하고 손가락질 받는 마이너 중의 마이너가 이 여인이었던 거다. 먹고는 살아야 하였기에 그는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그 정오에 물을 길러 나온 것이다. 오늘날로 따지면 음지에서 겨우 연명해 가며 살아가는 노숙인, 외국 노동자와 같은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선거철에도 찾아갈 필요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 그런데 그에게 예수님은 물을 달라고 말을 건 것이다.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할 사마리아인 그 중에서도 비루하고 비루한 그 여인에게 말을 건 것이다. 여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그러자 예수님은 왠만해서는 자기소개 안 하는데 빗대어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이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될 것이라는 구원의 메시지를 주신다. 나약하고 나약해진 그 여인! 목이 말라 할 수 없이 사람의 눈을 피해서라도 우물가에 나온 여인의 형편을 보시고 예수님은 다가가시고 구원과 영생의 메시지를 주신 것이다.
- 기독교의 신은 인격적인 신이라고 말을 한다. 인격적이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그 믿는 대상을 사물이나 수단으로 보지 않고 대화의 대상으로 본다는 뜻이다. 다른 종교에서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가진 것을 빼앗아 버리고, 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사람의 희생을 강조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같이 아파하는 신이시고, 용서하는 신이시고, 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신이시다.
-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요즘으로 따지면 막장 인생을 살고 있는 그 여인에게 말을 걸었고 그 여인에게 영생의 물을 허락하셨다. 물론 우리가 노숙자이거나 그 여인과 같은 상황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과 실존에는 그들처럼 망가지고 연약해지고 남의 눈에 띄지 않기를 부분을 가질 수 있다. 가정의 문제일 수도 있고, 내 몸과 마음의 문제일 수도 있다.
- 아무리 부자라도, 아무리 젊더라도,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우리는 예수님의 어루만짐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우리 실존의 가장 낮고 낮은 곳, 가장 연약한 곳을 알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그 부분을 예수님께 아뢸 때 그 분은 그것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말을 거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결국은 위로해 주시고 영생의 소망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 그런 점에서 바울의 고백이 의미 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2:10) 우리에게 약한 부분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의 강함과 위로가 더욱 임하기 때문이다.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하나님의 위로를 기대하길 바란다.
- 좀 가벼운 예를 하나 들고자 한다. 제가 한번 박사과정 중 아주 중요한, 큰 시험에서 큰 은혜를 입은 적이 있다. ‘아는 데로 다 쓰시오’ 하는 종류의 시험인데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기도했다. 눈을 떴다. 답이 생각났을까?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다른 생각이 떠올랐고 그 내용을 쭉 썼다. 나중에 교수님의 평가였다: ‘매우 창의적인 대답이었다.’ 그렇지. 질문과 상관없는 답을 썼으니 그보다 더 창의적일 수 있겠는가?
- 사방이 막힌듯한 정오의 햇살 속 갈증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고 다가오시고 생수를 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영생하는 샘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공급하여 주시며 우리를 만나 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실 것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인생의 갈증이 심할 때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초청하라. 그분께서 그 갈증 해결해 주시고 영생의 샘물을 주실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