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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일 신년교례예배-새로운 시작

조회 239

교목실 2024-01-03 10:05

  1. 새로운 시작

  2. 고린도후서 5:17
  3.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4.  

    1. 지난 학기 총장님을 따라 여러 학과의 학습성과 발표회를 참관할 수 있었다. 모든 과가 자신의 전공별 특성에 맞게 배우고 익힌 바를 발표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 내용과 상관없이 분위기가 남달라 기억나는 과가 있다. 유아교육과였다.

     

    1. 총장님 등 손님 등을 맞이하면서 인사와 환호를 보내는데 소리의 톤이 보통 도레미파"솔" 정도의 톤은 되는 듯싶었다. 수십명의 학생들이 모두 “안녕하십니까?” 이런 톤으로 행사가 진행되고, 체험 코너마다 설명을 해 주는 데도 그런 분위기를 계속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그 건물 이름대로 기쁨의 밭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런 모습은 일종의 전문의식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나 생각했다.

    1. 유아교육과 학생들이 만나고 가르칠 대상은 유치원생이다. 자신이 가르치고 나아가야 할 대상을 생각하고 말하고 준비하니 그 집단의 톤은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하이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는 그 눈높이에서 나오는 하이톤이 좋았고, 과장하자면 저도 마치 유치원생이 된 듯 학생들의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1. 이처럼 내가 만나는 대상을 생각하며 눈높이를 맞추는 일은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1. 이런 모습은 손주를 대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목소리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저는 아직 손주가 없지만, 우리 집 강아지를 대하는 저의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다. 말 못하는 개한테 온갖 혀 짧은 소리로 대화를 하곤 한다. 심지어 왜 강아지는 말을 하지 못할까 아쉬워하기도 한다.

     

    1. 그런데 이거 아시는가? 하나님도 바로 이렇게 눈높이를 맞춰 주시라는 분이라는 사실말이다. 만나는 대상을 위해 말투도 바꾸시고 그 대상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1.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눈높이를 맞추고자 스스로 인간이 되셨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말을 하셨는데 그 기록이 바로 다름 아닌 성경인 것이다.
    2. 오늘 우리는 2024년 새해를 맞아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러한 “새해, 새시간”도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마련해 주신 눈높이 선물이다.

     

    1. 하나님은 완벽한 신이시기에 새해가 되었다고 더 새로워질 수 없고, 변함없는 분이시기에 이전보다 갑자기 우리를 더 좋아하거나 덜 좋아하지도 않는 존재시다.

      하나님의 속성 상 2024년의 하나님이 2023년의 하나님보다 더 새로울 수도 없고 과거의 일 또한 잊어버릴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이다.

     

    1. 그럼에도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 오늘 본문처럼 “새롭게 되었다. 이전 거 잊어버렸다. 보라 새것이 되었다” 이렇게 말해 주시는 거다. 또한 다른 성경에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이전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고하시고 “새 일을 행하겠다”고 말하십니다. (사43)

     

    1. 이러한 새해 새시간의 구분은 오롯이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시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시는 분의 마음을 헤아려 선물을 받을 수 있어야 하겠다. 그냥 또 ‘해가 바뀌었네’ 그런 마음가짐은 새로운 시간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 것이다.

     

    1.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이 2024년이라는 선물을 보다 뜻깊게 받는 것일까?
    2. 그것은 아마도 오늘 말씀 그대로 이전 것에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워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1. 서머싯 모옴이 쓴 [인간의 굴레에서] 라는 소설에 한 노인의 고백이 나온다: 인생은 페르시아 양탄자와 같아. 그저 손길가는대로 짜가는 것 같지만 그것이 완성될 즈음에서야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1. 저는 이 대목을 놓고 이렇게 생각한다:
    2. 인생이라는 것을 카페트라고 생각할 때 그 카페트에는 다양한 색깔이 들어간다. 마음 같아서는 언제나 밝은 색이 들어가면 좋겠지만 검은색과 같은 어두운 색도 섞인다. 그런데 여러 색이 섞일 때 오히려 인생이라는 양탄자는 더욱 멋진 작품이 된다는 말이겠다.

    3. 혹시 작년에 어두운 색깔로 여러분의 시간이 많이 칠해졌는가? 그 또한 나를 더욱 멋지게 만드는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올해에는 다른 색깔이 더해질 수 있다는 기대를 있지 마시라.

     

    1. 이것이 바로 2024년이라는 선물을 받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1.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 쓰인 “새로운”이라는 단어의 뜻도 되새길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1. 성경이 쓰여진 헬라어에서는 새롭다는 단어가 두 종류가 있어서 하나(neos)는 시간적으로 새 것 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2. 또 하나(kainos)는 질적으로 새롭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새롭다”는 바로 후자의 것이다. 시간적 새로움을 넘어서 질적인 새로움을 뜻하는 것이다.

     

    1. 그렇기에 2024년이라는 시간 선물을 감사하면서 단지 시간적인 새로움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 질적으로 새로워지는 노력과 기대를 할 필요가 있다.

     

    1. 2024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맞아 내가 하나님 안에서 질적으로 새로워지고 발전할 것을 기대하는 것!
    2. 그것이 2024년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큰 뜻을 헤아리는 자세라고 하겠다.

     

    1. 마침 올해가 용의 해 갑진년이라고 한다. 청룡의 해라고 하더라.
    2. 제가 가능하면 아재개그가 될 법한 언어유희는 자제하려고 하는데 이번만은 양해해 주길 바란다.

     

    1. 갑진년을 맞이하여 그 어느 해보다갑진” 한 해를 보내길 기원한다.
    2.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눈높이를 맞춰 2024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주신 이유이다.
    3. 이 “갑진년”이라는 “갑진” 선물을 “갑지게” 기대하며 “갑지게” 출발하시길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