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학기 총장님을 따라 여러 학과의 학습성과 발표회를 참관할 수 있었다. 모든 과가 자신의 전공별 특성에 맞게 배우고 익힌 바를 발표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 내용과 상관없이 분위기가 남달라 기억나는 과가 있다. 유아교육과였다.
- 총장님 등 손님 등을 맞이하면서 인사와 환호를 보내는데 소리의 톤이 보통 도레미파"솔" 정도의 톤은 되는 듯싶었다. 수십명의 학생들이 모두 “안녕하십니까?” 이런 톤으로 행사가 진행되고, 체험 코너마다 설명을 해 주는 데도 그런 분위기를 계속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그 건물 이름대로 기쁨의 밭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런 모습은 일종의 전문의식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나 생각했다.
- 유아교육과 학생들이 만나고 가르칠 대상은 유치원생이다. 자신이 가르치고 나아가야 할 대상을 생각하고 말하고 준비하니 그 집단의 톤은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하이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는 그 눈높이에서 나오는 하이톤이 좋았고, 과장하자면 저도 마치 유치원생이 된 듯 학생들의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 이처럼 내가 만나는 대상을 생각하며 눈높이를 맞추는 일은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 이런 모습은 손주를 대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목소리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저는 아직 손주가 없지만, 우리 집 강아지를 대하는 저의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다. 말 못하는 개한테 온갖 혀 짧은 소리로 대화를 하곤 한다. 심지어 왜 강아지는 말을 하지 못할까 아쉬워하기도 한다.
- 그런데 이거 아시는가? 하나님도 바로 이렇게 눈높이를 맞춰 주시라는 분이라는 사실말이다. 만나는 대상을 위해 말투도 바꾸시고 그 대상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눈높이를 맞추고자 스스로 인간이 되셨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말을 하셨는데 그 기록이 바로 다름 아닌 성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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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2024년 새해를 맞아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러한 “새해, 새시간”도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마련해 주신 눈높이 선물이다.
- 하나님은 완벽한 신이시기에 새해가 되었다고 더 새로워질 수 없고, 변함없는 분이시기에 이전보다 갑자기 우리를 더 좋아하거나 덜 좋아하지도 않는 존재시다.
하나님의 속성 상 2024년의 하나님이 2023년의 하나님보다 더 새로울 수도 없고 과거의 일 또한 잊어버릴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이다.
- 그럼에도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 오늘 본문처럼 “새롭게 되었다. 이전 거 잊어버렸다. 보라 새것이 되었다” 이렇게 말해 주시는 거다. 또한 다른 성경에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이전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고하시고 “새 일을 행하겠다”고 말하십니다. (사43)
- 이러한 새해 새시간의 구분은 오롯이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시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시는 분의 마음을 헤아려 선물을 받을 수 있어야 하겠다. 그냥 또 ‘해가 바뀌었네’ 그런 마음가짐은 새로운 시간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 것이다.
-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이 2024년이라는 선물을 보다 뜻깊게 받는 것일까?
- 그것은 아마도 오늘 말씀 그대로 이전 것에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워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서머싯 모옴이 쓴 [인간의 굴레에서] 라는 소설에 한 노인의 고백이 나온다: “인생은 페르시아 양탄자와 같아. 그저 손길가는대로 짜가는 것 같지만 그것이 완성될 즈음에서야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 저는 이 대목을 놓고 이렇게 생각한다:
- 인생이라는 것을 카페트라고 생각할 때 그 카페트에는 다양한 색깔이 들어간다. 마음 같아서는 언제나 밝은 색이 들어가면 좋겠지만 검은색과 같은 어두운 색도 섞인다. 그런데 여러 색이 섞일 때 오히려 인생이라는 양탄자는 더욱 멋진 작품이 된다는 말이겠다.
- 혹시 작년에 어두운 색깔로 여러분의 시간이 많이 칠해졌는가? 그 또한 나를 더욱 멋지게 만드는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올해에는 다른 색깔이 더해질 수 있다는 기대를 있지 마시라.
- 이것이 바로 2024년이라는 선물을 받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 쓰인 “새로운”이라는 단어의 뜻도 되새길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 성경이 쓰여진 헬라어에서는 새롭다는 단어가 두 종류가 있어서 하나(neos)는 시간적으로 새 것 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2. 또 하나(kainos)는 질적으로 새롭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새롭다”는 바로 후자의 것이다. 시간적 새로움을 넘어서 질적인 새로움을 뜻하는 것이다.
- 그렇기에 2024년이라는 시간 선물을 감사하면서 단지 시간적인 새로움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 질적으로 새로워지는 노력과 기대를 할 필요가 있다.
- 2024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맞아 내가 하나님 안에서 질적으로 새로워지고 발전할 것을 기대하는 것!
- 그것이 2024년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큰 뜻을 헤아리는 자세라고 하겠다.
- 마침 올해가 용의 해 갑진년이라고 한다. 청룡의 해라고 하더라.
- 제가 가능하면 아재개그가 될 법한 언어유희는 자제하려고 하는데 이번만은 양해해 주길 바란다.
- 갑진년을 맞이하여 그 어느 해보다 “갑진” 한 해를 보내길 기원한다.
-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눈높이를 맞춰 2024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주신 이유이다.
- 이 “갑진년”이라는 “갑진” 선물을 “갑지게” 기대하며 “갑지게” 출발하시길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