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벤에셀
사무엘상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 상상할 수 있듯이, 신학교는 언제나 예배로 한학기를 시작하고 또 예배로 한학기를 마친다. 제가 신학부와 신학대학원 7년을 다니는 동안 앞의 몇 년을 제외하고는 서정운 목사님이자 교수님이 총장님이셨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개강과 종강 채플은 총장님께서 설교를 하셨다.
- 그런데 매 학기 종강예배 때 그분의 설교본문과 주제는 바로 오늘 본문 에벤에셀이었다.
- 두 학기씩 거진 5년을 만났으니 거의 10번이 다 같은 제목이고 같은 주제였다.
- 그래서 몇 년이 반복되자 종강채플이 되면 총장님도 알고 학생들도 알았다. 무엇을 설교하고 무엇이 제목일지를 말이다. 아예 뭐할 줄 알죠 하는 분위기로 설교를 시작했다.
- 에벤에셀은 문자적으로 “도움의 돌”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하나님이 이번 학기도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종강 채플 때 이 말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지 않을까 한다. 그렇기에 서정운 총장님의 매번 반복되는 주제에 그 누구도 똑 같은 거 매번 하냐고 말하는사람 없었다.
- 그 어느 누구 하나 한학기를 마치는 데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동일한 심정 아니겠나 생각한다.
- 한편, 에벤에셀이라는 말이 뜻도 좋고 단어 소리도 좋아 회사의 이름 등으로도 꽤 쓰인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이 이름에는 아픔이 담긴 배경을 담고 있다. 성경의 역사 속에서 살펴보면 에벤에셀의 장소는 전쟁터의 장소였고, 아픔이 있었던 공간이었다.
- 오늘 성경의 등장인물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블레셋이라는 주변 강국이 쳐들어왔다. 그런데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나태하게 지내며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있던 암흑기였다.
그래도 들은 것은 있어서 블레셋을 물리치겠다고 십계명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언약궤를 들고 나갔다. 그러나 오히려 그 일로 언약궤도 뺏기고 3만명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없이 언약궤를 부적처럼 사용한 결과였다.
그렇게 20년이 흘러 오늘 본문처럼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리더가 되었고 이 때, 블레셋이 다시 쳐들어왔다. 20년전보다 전세가 더 열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무엘이라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 사람들은 미스바라는 곳에 모여 기도를 드렸다. 그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셨고 도움이 되어 주셔서 블레셋과의 싸움에서도 이기고 언약궤도 찾아오게 된 것이다.
- 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돌이 바로 “에벤에셀”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다.
- 우리 힘은 20년 전보다 더 약해졌지만, 우리의 믿음은 고통속에 성장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기도, 그것이 승리의 절대 조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사건을 응축한 이름이 바로 에벤에셀인 것이다.
- “에벤에셀” 말도 예쁘고 기억하기 좋지 않는가?
- 좀 엉뚱하지만 제가 중고등학교 급훈 중에 신박하다 하여 유명세를 탄 것들 몇 개 살펴봤다. 뭐 주로 공부에 관한 것이지만 이런 급훈이 있더라 요즘은 학생들이 직접 만든다고 하더라:
“스스로 깨면 병아리, 남이깨면 후라이”/ “네 성적에 잠이 오냐”/ “칠판보기를 송중기 보듯”/ “거울보고 울지 마라. 공부하기 좋은 얼굴이다”/”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 /“엎드리면 얼굴커진다”/ 아버지는 망하셨지 인생을 즐기시다”
- 짧은 표현 속에 함축된 뜻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 그런 점에서 여러분도 “에벤에셀” 단어 하나 기억하면 어떠실까 한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 한학기 수고 많으셨다. 정말 여러분의 노고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 스푼 더해 보자는 것이다. 신앙을 떠나 신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겸손한 인간의 고백도 더해진다면 여러분의 수고는 더 빛이 나지 않을까 한다.
- 동시에 이번 학기 많이 힘들다 못해 꼬이고 낙망한 시간이 많았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학교 또 공부 이야기한 만큼 제가 한 한기 마지막 수업에서 했던 던 이야기를 덧붙여본다. 혹시나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덧붙여본다.
- 지난 학기로 기억하는데 마침 마지막 강의 주제가 종교와 과학이라서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등을 예로 들었다. 제가 임의로 막대처럼 수직으로 그려서 제일 아래부터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등을 그렸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광선은 가시광선이라고 하여 “빨주노초파남보라색”만 보인다. 인생을 살다 보면 보라색처럼 인간의 눈에 보기에는 최고의 자리, 위치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때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 위에 비록 보이지 않지만, 자외선이 있고, x선, 감마선 등이 있다.
- 그리고 반대로 빨간색처럼 인생의 밑바닥, 피 맛을 경험하는 때도 올 수 있다. 그럴 때 내가 바닥이다. 내 인생 끝났다 생각하지 말자. 그 아래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의 바닥을 떠 받치고 있는 적외선이 있고 그 밖의 광선이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종교적 인간이다.
- 여러분, 이번 학기 너무 잘되었다고 내 힘으로만 되었다고 교만하지도 마시고, 이번 학기 힘들었다고 내 밑은 아무도 없다고 절망하지도 않길 바란다.
- 하나님이 내 위에 계시고 하나님이 내 발을 들어 올리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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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우리 계명문화대학교를 도우셨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