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로 완성되는 인생이라는 축제
요한복음 2:1-1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극 맥베스(Macbeth)의 대사 중 인생을 논하는 대사가 있다: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아. 인생은 그저 걸어 다니는 그림자, 무대 위에서 거들먹거리며 초조하게 자신의 시간을 보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가련한 배우, 무어라고 마구 떠들어대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백치의 이야기.”
- 그러니까 인생은 허무한 무대와 같고 우리는 거기서 연기하는 배우와 같아서 막이 내리면 무대를 내려오는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지요?
- 우리에게 인생은 무엇인가? 인생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이 오후에 심오한 이야기로 여러분의 잠을 급속도로 부르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 대한 한 대답을 오늘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이다. 요한복음은 다른 3개의 복음서와 비교해서 가장 나중에 쓰였고 보다 의도성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정리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에는 7개의 기적이 잘 정리되어 구성되어 있고 그 기적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드러내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기적(miracle)이라는 표현 대신에 이적(sign)이라는 표현을 쓴다. 예수의 메시야됨을 나타내는 의도를 담은 표현이라고 본다.
-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소개되는 이적이 바로 오늘 본문이다. 오늘 본문의 상황은 결혼식이다. 일반적으로 결혼이나 출산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사건으로 꼽힌다.
- 예수님과 그의 어머니가 초청된 것으로 봐서 예수님도 아는 사람의 결혼식이라고 추정된다. 신랑이 요한이라는 설도 있고 마리아의 여동생의 결혼식이라는 설도 있다. 그런데 축제의 꽃이라고 할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예수께 부탁한다. 처음에는 발을 빼던 예수님이 손님 등이 손발을 씻기 위해 준비해 둔 항아리 6개에 물을 채우라고 하신다.
- 한국어 성경에서는 그 치수를 설명하면서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쉬운 영어 성경에는 20 또는 30갤런 크기의 항아리로 표시한다. 그래서 대략 중간 값이 25갤런으로 계산해서 리터로 환산하면 6개의 항아리로 만들어진 포도주의 양이 무려 564ℓ다.
엄청난 양의 포도주가 아닐 수 없다. 시중에 포도주 한 병의 양이 1ℓ가 안 될 거라 보는데 1ℓ라고 여유 있게 칠 때 이때 만들어진 포도주 양이 최소 564병이라는 거다. 예수님이 엄청난 일을 첫 이적으로 베푼 것이다. 주인은 횡재한 거다.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을 읽으면 오래전에 들은 박은조 목사님이라는 분이 이 대목을 놓고 설교하셨던 내용이 떠오른다. 그분이 뭐라고 하셨냐면, 인생사에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고 할 결혼식마저도 예수님의 관점에서 보면 불완전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 그 결정적인 증거로 무엇을 꼽았냐면 항아리 숫자이다. 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6은 불완전한 숫자로 상징된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666은 불완전의 극치로 해석된다. 그런데 박 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오늘 본문 항아리 숫자가 몇 개라고요? 5개도 아니고 7개도 아니고 6개.
물론 상징적 해석이 한계가 있겠지만, 요한복음이 철저히 목적을 가지고 구성된 복음서라고 할 때 의미 있고 흥미로운 해석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이 물 항아리 숫자에 예수가 결혼을 바라보는 관점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인간에게는 그래도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할 시간이 결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마저도 예수의 눈에서 볼 때는 불완전한 시간이라는 말이다.
- 한편 손님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564병이나 되는 최상급 포도주가 쏟아져 나오자 “야 보통 술 취하면 은근슬쩍 질 떨어지는 포도주를 내오는 게 일반적인데 이 집은 더 좋은 게 나오는구먼” 이런 식으로 반응했다.
- 그런데 손님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인이라도 “이게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궁금해하고 그것을 베풀어준 분에게 감사라도 드려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예수님께서는 결혼 행사가 계속 진행되도록 진정으로 도운 분이셨지만, 손님으로 대표되는 인생들은 여전히 포도주만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불완전한 행복”을 즐긴다.
- 불교 용어 중에 “지월(指月)”이라는 말이 있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바라봐야 하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쳐다본다는 뜻이다. 이 사건에도 그 지월 사상이 적용된다. 인생사의 행복을 주관하는 예수님을 찾아내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하는데 예수님은 안 보고 포도주만 본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예수가 주는 포도주가 행복이고 결혼식과 같은 시간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속되는 것을 행복이라고 말한다.누가 주던 상관없고 포도주만 떨어지지 않는 인생, 시간이 갈수록 더 좋은 포도주를 먹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런데 심지어 예수를 믿는 우리도 자칫하면 그리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나의 행복을 위해 포도주를 제공해주는 분으로만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20장 31절 말씀을 다시 반복한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 요한은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알리고 싶었겠는가? 예수님 자체가 행복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만 생명을 얻는다. 행복의 근원, 생명의 근원은 예수님이다. 포도주가 아니라 예수님 그 자체로 행복을 고백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 우리가 행복한 이유는 예수님이 주시는 포도주 때문이 아니라 포도주도 주시는 예수님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란다.
- 19세기 유명한 영국 시인 바이런에 관해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설이 몇가지 존재한다) 그가 케임브리지 대학 3학년 신학 수업 시험문제로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에 담긴 종교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서술하라”
- 이에 한참을 기다리다가 답을 하라는 선생님의 재촉 끝에 그는 짧은 한 줄로 답했고 그 답은 최고의 성적을 받게 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물이 그 창조주를 뵙고 얼굴을 붉혔도다”
- 물도 창조주를 알아보는데 우리가 어찌 창조주 아닌 것으로 행복을 찾겠는가?
우리도 물처럼 창조주를 알아보고 변화하는 인생을 살자.행복의 근원이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주를 공급하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예수로 인해 인생의 무대에서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의미 있게 살아가는 배우가 되길 바란다.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고,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인생되길 바란다.
- 그리하여, 예수로 인해 완성되는 인생이라는 축제를 즐기는 모두가 되길 축원한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