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처럼 우리와 함께
마태복음 1: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28: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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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개봉한 영화 중에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있다. 건축학개론을 들으면서 친해진 20살짜리 풋내기들의 첫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 그 중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승민: 저기.. 첫눈 오는 날.. 뭐해...?
서연: 첫눈? 그거 언제 오는데?
승민: 어.. 그러니까.. 글쎄.. 보통 겨울에.. 때 되면..
서연: 우리.. 그날 만날까..?
서연: 재밌겠다.. 그럼 첫눈 올 때 너네 동네 그 빈집 있잖아~ 거기서 보자~ 어때?
승민: ... 뭐... 그러던가..
서연: 약속~!
- 그러나 많은 첫사랑이 그렇듯 둘의 관계는 작은 오해로 삐그덕거렸고 결국 첫눈 올 때 그 둘은 같이 하지 못한다. 그러나 15년이 지나 다시 만난 그 둘은 뒤늦게 알아 차린다. 둘 다 약속장소에 왔다는 사실을. 서로 약속을 안 지켰다고 오해하고 둘 은 헤어졌지만 둘 다 약속장소에 왔다는 사실을 15년이 지나 확인하게 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 여러분도 아마 살면서 한번쯤은 누군가와 “첫눈오면 볼래?” 하며 약속을 한 적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약속으로 결혼한 커플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약속이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알면 큰일날 약속이고, 또 이성 간의 약속이 아니더라도 여하튼 누구에게나 그러한 약속과 기다림의 경험이 있지 않을까 한다.
- 물론, 지금의 팀장님이나 부장님이 첫눈오는 날 만나자고 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 만나는 게 나을 것이고 부장님들은 절대 그런 계획은 생각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약속의 대상이 그립고 보고싶은 존재라면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크면 클수록 그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도 그 만큼 커질 것이다.
-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는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 못한다. 그렇기에 그 분의 성경이라는 약속채에 남긴 그 약속은 믿을만하고도 남을 것이다.
오늘 제목이 “첫눈처럼 우리와 함께” 이다.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는 노래 제목도 있는데 이 첫눈은 참 아름다운 기다림을 상징하는 단어가 아닐까 한다.
- 어제 총장님도 얼핏 말씀하셨지만, 이번 주부터 크리스마스까지 교회에서는 대림절이라는 절기로 지키는 날이다. 주님의 탄생,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라고 하겠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오심은 첫눈과 같길 바란다. 마치 내일 소풍을 앞두고 들뜬 마음에 잠을 설치는 어린 아이처럼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기쁨과 감격과 사랑의 아이콘이 되길 바라본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첫눈이나 소풍과 같은 것에 감동이 1도 남아있지 않은 분, 현실이라는 시간 속에 낭만은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지 오랜 분이 많으리라 본다. 오직 돈 외에는 감동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것 같다.
- 그런 분에게 도움이 될 지 모르겠는데, Gary Anderson이라는 노틀담 대학의 교수가 쓴책 중에 죄(sin)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 따르면 성경에서 죄를 3가지로 표현한다고 한다. 하나는 때(stain), 또 하나는 짐(weight),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뭐냐면 빚(debt)이다.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이유가 뭐냐면 우리의 때를 없애고 짐을 가볍게 하고 빚을 탕감해 주기 위함이라고 하겠다. 여러분, 저는 빚이 있어요. 그래서 은행이 싫어요. 그런데 누가 제 빚을 탕감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일 여러분에게 누군가 와서 “당신 빚이 얼마이든 내가 다 대신 갚아 주겠소” 하면 정말 내일이 기다려지고, 그 분이 기다려지지 않을까요?
- 그런 예수님이 오시는 절기가 대림절이고 12월이다. 그리고 돈만 다 대신 갚아주고 가는 게 아니라 오늘 본문에 의하면 함께 계셔 주시려고 오신다는 것이다. 내가 또 때가 끼고 짐이 무거워지고, 빚을 질 수 있는데 그때 힘이 되어주기 위해 함께 계셔 주신다는 말이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기다림의 설렘, 예수님을 통해 해결될 문제로 예수님을 첫눈처럼 기다릴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을 점점 예수님을 잊고 살아가는 듯하여 씁쓸할 때가 있다.
- 1953년에 사무엘 베케트가 쓴 희곡집으로 [고도를 기다리며] 라는 글이 있다. 1969년 이 글로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한 유명한 글이다. 극의 주인 공 중 한명인 블라드미르는 수십년간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나온다. 또 한 주인공 에스트라공은 비관론자로서 오지도 않을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드미르를 비꼬며 자리를 뜨자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 쉽게 말해, “가자” 그러면 “안 돼 고도가 온다고 했어.” 뭐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는 희곡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고도는 끝끝내 그 연극 속에 나타나지 않는다. 오지도 않을 고도를 기다리는 현대인의 부조리를 그린 글이다.
- 물론 이 고도가 누구인지 저자도 모른다고 하고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한 해석에 의하면 이 고도가 예수님으로 상징될 수 있다. 오지도 않을 예수님을 기다리는 현대인 우매한 기독교인을 비꼬는 글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그만 기다려. 아냐 예수님이 오신다고 했어. 뭔 예수야. 정신차려. 뭐 이런 분위기로 바꿔 볼 수 있겠다.
- 그러나 첫눈이 언제 올 지 모르지만, 그리고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했던 그 사랑은 너무나 커서 지키고야마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초림이든 재림이든 어려운 것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예수님의 함께하심을 기대하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낭만적인 기독교인이 되길 바란다.
- 그리고 종교를 떠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절기에, 여러분도 누군가를 찾아가 그 대상에게 기쁨의 존재가 되길 바란다. 혹 바삐 산다고 잊었던 어릴 적 친구, 화해한다고 하면서 알량한 자존심으로 미뤘던 친구와의 다툼, 돈 벌면 갚아야지 하면서도 아직 갚지 못했던 친구의 돈이 생각난다면 첫눈처럼 그들을 만나고 찾아가길 바란다.
- 오늘 첫눈, 첫사랑 뭐 이런 감성적인 분위기로 시작한 김에 낭만적으로 시 하나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문정희 시인의 시 [겨울 사랑] 이라는 시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서성대지 말고/숨기지 말고/
-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 들어/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 예수님이 여러분에 이 눈송이처럼 첫눈처럼 다가가길 바란다. 그래서 이 겨울 그 어느때보다 따뜻하게 보내길 바란다. 때도 벗기고 짐도 벗고 빚도 없이 지내길 축원한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