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감사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미국에서 속도 위반으로 경찰에 잡힌 적이 있다. 집 근처 마켓에서 아내와 같이 생필품을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주택가 지역이라 속도 제한 30 마일이었는데 40 마일 이상으로 달리다 숨어있던 경찰한테 잡혔다. 그것도 밤에 걸렸다. 경찰차는 정말 말로만 듣던 강한 서치라이트를 내 차로 환하게 비췄다.
- 제 차량 번호를 검사하는 지 꽤 있다가 드디어 경찰관 한 명이 저한테 다가왔다. 미국 경찰은 등치도 등치지만 표정이 한몫 한다. 아마 웃지 않는 훈련을 따로 받는 것 같다.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다: “어디 갔다 오는 거냐?” “속도위반을 했다”. 그리고는 운전면허증과 차량등록증을 달라고 했다. 참고로 미국에서 속도위반은 수백불의 상당한 금액의 벌금에 벌점이 붙는다. 가난한 유학생에게 몇 백 불은 엄청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 그 순간, 지난 주일인지 2주전인지 예배 설교 때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자기가 경찰한테 교통 범칙 티켓을 많이 받는다는 거다. 그날도 또 걸렸다는 거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는 “목사님이 그렇게 딱지 많이 뗀다는 게 별로 덕이 안 됩니다” 이러면서 듣고 있었다. 그런데 평상 시와 달리 그날은 목사님이 한마디 하고 싶더란다.
그래서 그 경찰한테 “have mercy on me” 하고 말했다는 거다. 굳이 그 말을 번역하면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뭐 이런 말이 된다. 거의 하나님께 쓰는 종교적인 용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통했다는 거다. 그러면서 목사님이 혹시 여러분도 경찰한테 걸리시면 써먹어 보라고 하셨다.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는데 정말 그런 일이 나한테 생긴 거다. 그리고 정말 그 목사님이 하셨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저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애절하고 간절한 목소리로 그 무서운 경찰에게 한마디 했다: "Please have mercy on me."
- 제 말에 그 경찰, “자비를 베풀 수 있을 지 없을지는 한번 봐야 한다”는 퉁명스런 말로 다시 경찰차로 돌아갔다. 얼마나 되었을까? 티켓을 발부해서 왔다. 속도 위반이 아니라 “주위집중 불이행” 뭐 그런 걸로 끌어줬다. 몇 십불 짜리 싼 걸로 그것도 별 점 없는 걸로. 진심을 다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던 적이 있다.
- 혹시나 오해할 분이 있을까 덧붙인다. 목사님들이 그러면 되냐? 이렇게 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포인트는 목사가 경찰에게 아부해서 은혜 입었다가 아니다.
- 나는 내 잘못을 인정하며 수백불이 들어도 벌점 수십점이 들어도 내려고 했다. 그런데 마침, 주일에 들었던 설교가 생각났고 혹시나 하는 맘에 해 봤는데 통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나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받은 이 기쁨을 나누고 싶은 거다.
- 여러분도 그런 경험 있지 않겠나? 올해 여러분의 잘못이지만 뜻밖의 은혜로 넘어가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뜻밖의 도움을 받아 곤란을 극복한 적 있지 않을까?
- 그게 바로 감사의 제목 아니고 무엇이겠나? 난 잘못한 것밖에 없는데 그 잘못을 모른 척 넘어가준 것. 그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속의 은혜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아도 그와 같이 용서받은 일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런 은혜와 감사가 어찌 올해라고 없겠는가? 감사의 제목은 거창한 데만 있지 않다. 이런 모든 것이 감사의 제목이 아닐까?
- 오늘 본문은 기독교인 뿐 아니라 비기독교인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성경구절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있는데, 그게 바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다.
- 그런데 말이다. 이게 가능할까? 여기에 대해 많은 기독교인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세상 줄 놓은 사람도 아니고 항상 기뻐할 수 있으며, 어떻게 집에만 있는 사람도 아니고 모든 시간에 기도할 수 있으며, 어떻게 속고 속이는 세상 살면서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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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기도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 조건으로 기쁨과 감사도 해석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도할 때 꼭 눈을 감고 하지 않아도 되고 또 두 손을 잡지 않고 해도 된다. 그런 모습은 기도 대상에 대한 집중과 간절함의 표시일 뿐이다. 게다가 기도는 꼭 정해진 멋진 말로만 하지 않아도 된다.
성경에서 기도라고 할 만한 글들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시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편 구성을 간략히 말해보자면 앞부분에서는 “하나님” 하고 불러 놓고는 곧이어 신세 한탄, 원망, 원수에 대한 욕 등을 쏟아낸다. 그러다가 뒤에 가서는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는 하나님 찬양으로 끝난다.
- 그러니까 기도라고 하지만 욕이나 나쁜 생각이 들어 있다는 거다. 그런데 기도가 되는 중요한 전제 조건은 뭐냐면 그걸 “하나님”이라는 대상에게 쏟아놓느냐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억울하고 분한 일을 그냥 쏟아내면 욕이고 저주가 되지만, 하나님 하고 고백하면 그것마저 기도가 된다는 말이다.
- “쟤가 미워요. 아 또 일을 시키네요. 저 분은 이민도 안가나요.”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 쟤가 미워요 하면 그것마저 기도가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기도는 쉽고 범위가 넓어진다. 우리가 여러 생각이 하루 종일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시작이나 끝에 하나님이 들어가면 그것은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런 자세로 감사와 기쁨도 생각해 보자는 거다. 거창한 것, 대단한 것, 특별한 것이 아니더라도 소소한 것도 감사와 기쁨이 될 수 있겠다. 너무나 당연한 것, 너무나 일상적인 것도 감사의 대상이다. 지난 주에 제 아들이 수능 시험을 봤다. 정말 문자 그대로 시험지를 잘 보고 왔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에 시험을 보기 전이나 본 후나 멘탈에 전혀 변화가 없으니 이 또한 감사하다.
- 엊그제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천상병 시인의 시를 소개받을 기회가 있었다. 아시겠지만 그는 간첩으로 몰려 옥고를 치뤘고 후유증으로 고생했고 정신병자로 몰려 정신병원에 입원 당한 경력이 있다. 동료들은 그가 죽을 줄 알고 유고시집을 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시 중에 행복이라는 시가 있다: 아마 부분적으로 동의가 되지 않는 분도 계시계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들어주시기 바란다.
- 나는 세계에서 제일행복한 사나이다. 아내와 찻집을 경영해서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 어떤 말에도 하나님만 붙이면 기도가 되듯, 어떤 것도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없는 것은 없다.
- 프랑스 사상가 베르나르 퐁트넬이 사람이 말했다고 한다: “행복의 가장 큰 장애물은 너무 큰 행복을 기대하는 마음이다.” 잘 알듯이, 행운이라는 네 잎 클로버만 찾으려다 세 잎 클로버를 짓밟아 버리지 마시라.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 사소한 것에도 감사와 기도를 놓지 않아 항상 기뻐하고 항상 기도하고 항상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한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