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제가 대학교 청년부 다닐 때 나보다 나이가 꽤 많은 청년부 선배의 경험담이 여전히 기억난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그 형 옆자리에는 한 젊은 엄마가 아주 어린 아이를 안은 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형님 말에 의하면 옆에 앉은 애가 자꾸 자기의 머리인가를 건드렸다는 거다.그래서 귀찮은 맘에 그 애 손인가를 툭 쳤다는 거다. ‘아파서 였는지, ‘놀라서 였는지’는 모르나 그 일로 그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는 거다.
그 어린 아이의 엄마가 그 형 보고 “아 왜 애를 울리냐?”고 한마디 했단다. 그 말에 그 20대 중반은 훨씬 더 넘은 형은, 그 갓난아이와 같은 아이를 가르키면서 이런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얘가, 얘가 먼저 했어요." 아직도 그 이야기가 기억나는 걸 보면 그 당시 대학생인 내가 봐도 그 형이 참 “철닥서니”가 없어 보였던 것 같다.
사랑에 방향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더 성숙한 사람, 더 힘센 사람, 더 큰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더 많이 흘러가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다못해 남녀 간의 사랑을 봐도 보통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먼저 움직이는 법 아닌가? 그러다가 그 사랑을 받던 사람이 그것을 깨닫고 반응하면서 사랑은 결실을 맺게 되는 편이라고 하겠다.더 사랑하는 쪽이 상대적으로 덜 사랑하는 쪽보다 더 많은 걸 주고, 주어도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한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고 생각해 보자. 물리적인 크기나 절대적인 값으로만 평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대략 사랑의 크기에 따라 선물의 크기나 값어치 그리고 정성은 달라진다. 사랑의 표현은 화장실 휴지가 아니라 준비된 편지지에 정성스럽게 쓰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는 뜻이다. 물론 좀 여유가 되시면 거기에 다이아반지나 고급 자동차를 같이 선물하면 사랑은 더 확실히 전달될 것이다. 여유가 되면 말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한다.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 좀 할 줄 안다”의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님은 그냥 사랑 그 자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고 그 사랑의 선물로 무엇을 줬을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그 사랑의 징표로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줬다고 한다.
신학적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동체로 보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로 바로 하나님 자신을 줬다.
졌다. 선물로 자신의 목숨을 준 그 사랑을 어떻게 이기겠나?기독교인은 누구냐? 바로 그 큰 사랑 뒤늦게나마 깨닫고 그 받은 사랑 나누며 사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오늘 본문 11절의 고백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이라면 먼저 사랑하는 것이 바르고, 선생님이라면 학생을 먼저 사랑하는 것이 옳고, 어른이라면 아이를 먼저 사랑하는 것이 아름답다.
바라건대 오늘도 여러분이 처한 곳에서 만나는 대상에게 먼저 사랑의 선물을 나누는 삶을 살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갚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주에 국제협력기술선교과가 농촌봉사를 갔다. 담벼락에 페인트 칠도 하고 네일 아트 봉사도 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말했다: ‘지난번에 오고 이번에도 왔는데 자꾸 오니까 이 사람들이 별로 고마워하는 지 않는 것 같다.’ 사랑은 더 먼저 받은 사람이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는 사람에게 그리고 아직 그 사랑을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베푸는 거다. 고마워하지 않아도 베푸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그래서 계명문화대학교의 이름으로 국제협력기술선교과의 베품의 사랑은 계속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유명한 책 “사랑의 기술”에 이런 말이 나온다: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62)
기독교인으로서, 선생으로서, 부모로서 먼저 사랑하길 바란다. 특별히 이번주에는 추석 명절도 있다. 더 먼저 사랑받은 우리가 부모님과 어르신에게 그 사랑을 표현하고 조금이나마 되갚는 시간이 있길 바란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