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6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 우리나라 사람 복을 참 좋아한다. 영어권에서 새해가 되면 Happy new year! 하고 인사하는 데 우리 말로 번역하면 “좋은 새해” 성에 안 찬다. 우리는 이렇게 인사한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쯤 되어야 성에 찬다. 심지어 죽어서도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한다.
- 참고로 명복은 명부에서 받을 복을 말하는데 명부는 불교 용어로 죽은 사람이 가는 저승을 말한다. 거기서 복 받아서 좋은 생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가능하면 기독교인은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로 쓰는 게 옳다.
- 여하튼 복을 좋아한다. 그런데 하나님도 복 주기를 좋아한다.
- 오늘 본문은 복을 이야기한다. 특히 시편 1편은 시편 전체의 서론이자 대전제와 같은 말씀이다. 그러니까 시편은 결국 복을 받는 길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다. 그럼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상기하면 좋겠다.
복 있는 사람이 누구냐면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자라고 한다. 복 있는 사람은 계절을 따라 열매 맺는 나무와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복 있는 사람의 반대가 악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여기저기 기웃기웃한다는 말이다.
정리하자면, 성경에서 말하는 복, 이 복을 받는 사람은 누구냐면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길에 서 있는 사람이다. 뭔가 새로운 것, 다른 곳을 기웃거려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물을 떠나지 않듯이 주님의 자리에 주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고 복을 받는다는 소리다.
- 2학기가 시작되었다. 어떤 이에겐 새로운 시간이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똑같은 일상의 반복일 수도 있다. 새롭든 반복이든 변함없이 복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데 그 비결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에 계속 서 있는 거다.
우리가 나무라고 할 때 나무는 시냇가를 떠나면 안 되는 거다. 하나님의 말씀이 시냇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학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누는 자리에 변함없이 서길 바란다. 그럴 때 결국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
-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원래 시편 1편과 2편은 같은 장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놓고 보면 복있는 사람이 무엇인지 보다 확실히 정리가 된다. 시편 1편 1절 “복 있는 사람은” 하고 시작하는데 시편 2편 12절 마지막 절은 이렇게 끝난다: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행복과 안식을 찾기 전까지는 결코 그것을 찾아내고 누릴 수 없다."
- 올해 2학기도 여러분이 복 많이 받으면 좋겠다. 즉 여러분이 복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 비결은 분명하다. 계속 하나님 말씀의 자리에 거하는 거다. 여호와께 피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 2학기도 큰 복 받는 사람들이 다 되길 바라고 그 받은 복이 차고 넘쳐 내 주변에도 전하는 이번 학기 되길 축원한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