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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MYUNG COLLEGE UNIVERSITY

국토순례대행진 2016 국토순례 2소대 한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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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빈 2016-07-03 01:28

2016 국토순례대행진에 참여했던 간호학과 한수빈입니다.

학교에서 보냈던 모집 문자와 학교 곳곳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관심이 생겨 친구들과 지원하게 된 국토순례 대행진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시작해 출발할 때까지 별 진지함이 없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첫째 날은 마치 나에게 벌이라도 주는 듯한, 신고식과도 같은 하루였다. 그저 들뜬 기분에 힘든 줄도 모르고 촐싹거리며, 구호 외치며 걷다보니 배가 미친 듯이 고파왔다. 마침 점심시간이 다가와 성주의 마을회관 옆 잔디밭에 앉아 걸신들린 듯이 밥 두 그릇을 먹어치웠다. 첫 구간을 끝마치고 먹는 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제육볶음이 특히 맛있었다.
그 제육볶음이 화근이 되어 심하게 체를 했다. 양반다리를 하고 수그려 앉아 먹은 것이 원인인 것 같았다. 처음엔 까스활명수를 먹고 점차 괜찮아지는 듯싶었다.
왜관전적기념비에 들러서 묵념을 드렸다. 빗속에서 드리는 묵념이 묘한 기분이었다...
그 다음 쉬는 시간, 간식으로 빠삐코가 기다리고 있었다. 체한 게 다 내려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며 만류하는 보건선생님을 보면서도, 갈증에 못 이겨 빠삐코를 몇 입 먹어버렸다. 그 몇 입 이후로 나는 천국을 걷는지 지옥을 걷는지 모를 만큼 눈앞이 핑핑 돌았다. 비 때문에 우중충한 날씨에도 땀이 뻘뻘 흘렀다. 하늘이 노래졌고 한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수지침이 없어서 손도 못 따는 상황에선 게워내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지만, 토는 죽도록 하기 싫어서 끝까지 참았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휴식시간 컨테이너 화장실에서 토를 했다. 토를 하면서 눈물도 같이 떨어졌다. 내가 여기 와서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엄마얼굴도 떠올랐다. 특히 점심에 먹은 제육볶음이 원망스러웠다. 미련스러운 마음에 설움이 북받쳤다.
하지만 설움도 잠시, 속이 편해지고 나니 그제야 주위 풍경들이 눈에 들어찼고 공기, 냄새 들이 코에 느껴졌다. 음미하려는 찰나 왜관에 있는 첫날 숙영지에 도착했다. 저녁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샤워 같지도 않은 샤워를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둘째 날이 밝았다. 총교관님께서는 꼭두새벽부터, 오늘은 산을 넘어 가야 하기 때문에 가장 힘든 날이 될 거라며 우리에게 엄포를 놓으셨다. 하지만 나는 전날 밤의 걱정과는 달리 몸 컨디션이 정말 좋았고 또 등산을 좋아해 자주 했었기 때문에 첫째 날처럼 체하지 않는 이상 잘 걸어낼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아침도 꾹 참고 조금만 먹었다.
하지만 모든 예상을 뒤엎고 이번에는 쏟아지는 잠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비가 와 우중충했던 첫째 날과 달리 내리쬐는 햇빛에 온 몸에 땀이 줄줄 흐르는데, 역설적이게도 잠이 함께 쏟아졌다. 잠에 취해 눈을 감고 비틀비틀 걸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걸으면서 졸 수 있다는 사실이...
계속 쏟아지는 잠에 발목도 접질렀고 앞에 가던 소대원과도 여러 번 부딪혔다. 대열을 이리저리 이탈하며 걷는 내 모습을 보고 소대원들이 어깨도 주물러주고, 얼음물도 줘 가며 계속 잠을 깨워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걸으면서 잠을 잔 덕분인지, 잠을 깨고부터는 팔팔하게 걸었다. 걷다 보니 첫 날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와 너무 좋았다. 마른 흙, 돌, 멀리보이는 시골집들. 처음 보는 꽃들과 간간히 나비들을 보면서.. 평소엔 차를 타고 몇 분이면 지나치는 국도를 한발 한발 내 발로 걷고 있다는 것이 생소하게나마 와 닿았다. 또 산에 나있는 국도라, 내 위로 나무가 우거져 있었는데 그게 또 좋았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궜지만 나는 도대체 왜인지 모르게 에너지가 넘쳤다.
둘째 날 숙영지인 효령 초등학교에 도착해서 첫날 보다는 비교적 능숙하게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첫째 날엔 물이 너무 차가워 떨며 소리지르며 샤워를 했는데, 둘째 날은 그 찬물 샤워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인간의 적응력은 역시 놀라웠다. 다 씻고서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나에게’ 쓰는 편지라고 들은 순간부터 생각이 많아졌다. 뭐라고 적을지 꽤 생각한 후 써내려 가려는데 빨리 거두라고 했다.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차마 다 못써서 아쉬웠다. 그 후엔 소대끼리 모여 수박 하나를 쪼개 먹었다. 수박 냄새를 못 맡아 밖에 있어야만 해서 너무 아쉬웠다.
수박을 다 먹은 후에는, 단상 위에 개업한 병원에 가서 다들 물집을 찌르기 바빴다. 머리털 나고 물집이 처음 잡혀본 나는, 실을 꿴 바늘이 발가락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한참을 못 찌르고 있었다. 다행히 같은 과 선배님께서 어르고 달래어 물집을 직접 터트려 주셨다. 느낌이 신기했다.
자려고 누우니 3소대 교관이었던 최형순 교관님께서 받은 사연을 가지고서 라디오를 진행하셨다. 내 이름이 나올 리 만무하니 빠르게 잠을 청했다.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날. 시작부터 기분이 시원섭섭하니 묘했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오른쪽 무릎 뼈가 너무 아려서 깜짝 놀랐다. 이틀 간 물집이 잡힌 것 말곤 아픈 곳이 없었는데 걷기도 전부터 아려오니 ‘오늘 잘 걸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엄습했다. 아침부터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그 불안감을 배가했다.
우리 소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마지막 날이니 만큼 파이팅이 넘쳤다. 다들 우비 속에서 구호를 외치며, 앞사람 발만 보고 걸어갔다. 비가 꽤 많이 와서 신발에 물이 많이 들어왔다. 그냥 물이 신발 앞으로 흘러 들어와서 발뒤꿈치로 나갔다. 발이 양말과 함께 뚱뚱 불고 있는 게 느껴졌다. 막 냄새가 날 것 같아서 짜증도 나고, 걸을 때 마다 찰박 찰박 물소리, 우비 안에 차는 습기 등 삼일 중 가장 최악이었다. 괜시리 비 때문에 무릎이 더 아프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총교관님께서, 길목마다 잊을만하면 오셔서 파이팅의 하이파이브를 해 주셔서 힘이 났다. ♥
점심을 먹고, 신녕지구 전승비에 도착했다. 6 ˙ 25 때 국군들께서 치열하게 전투하여 승리해 인민군을 북쪽으로 퇴각시킨 곳이라고 했다. 그래고 그 전승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라고 했다. 전승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길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온통 초록색으로 덮여 있던 기억이 난다. 뭔가 기분이 ... 이상했다. 그 날 그 전투에서 우리 국군들이 패하셨다면, 이 곳을 내가 밟을 수 있었을까? 하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총교관님께서 강조하셔서 말씀하셨던 우리 또래의 학도병들 생각에 온종일 슬펐다. 전승비 앞에서 묵념을 한 후 헌화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고 그렇게 내려왔다.
그리고 마지막 목적지인 성덕대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너무도 멀리 보이는 성덕대학교 다섯 글자에 모두가 말이 없어졌다. 그렇지만 소대원들끼리, 절뚝이는 소대원은 부축하고 뒤처지는 소대원은 수건으로 연결해 끌어당기면서 가다보니 끝이 없어 보이던 길도 끝이 났다. 대학교로 올라가는 길에 여러 보직 교수님들과 학과 교수님들, 그리고 총장님께서 박수를 치고 계셨다. 뭉클하면서도 신이 났다 그렇게 학교 정문을 통과하고, 안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주체하지 못하고 막 달려버렸다. 몇몇 친구들은 울고, 몇몇 친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렇게 3일간의 대장정은 끝이 났다 매번 그랬듯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나니 그제야 좀 실감이 났다.
그날 밤 샤워는.. 다시없을 샤워였다.
샤워를 끝마치고 우리는 롤링페이퍼를 썼다. 성덕 대학교에 도착해서도 눈물이 나올 것 같진 않았었는데, 롤링페이퍼를 쓰려니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소대원들이 없었다면 이까지 걸어올 수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우리를 위해 애쓰셨던 소대장님 부소대장님 ㅠㅠ 감사합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또다시 걸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걷지 않으니.. 조금은 허무했던 것 같다. 이렇게 끝인가? 하는 기분으로 버스에 오른 후, 머리를 의자에 대자마자 기절했다. 학교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렸는데, 우리가 버스를 몇 분이나 타고 왔는지 묻기가 겁났지만 물었다. 약 1시간이 채 안된다고 했다. 그렇게 힘이 빠질 수가 없었다.
그 때 당장 생각을 했을 땐 힘이 빠졌지만, 집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100km 가량 되는 길을 그냥 걸었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남을 도우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또 이런 힘든 경험을 통해 추후에 있을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국토순례가 좋았던 점은, 학교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매일 같은 과 사람들만 보다가 가지각색의 과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자신을 이야기 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끼리 모여 같은 소대라는 이유만으로 의기투합이라니 .
정말 멋진 일이다. 이과 어휘력 때문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내 발로 직접 걸으며 호국영웅들을 생각하고 기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국토 순례 대장정
나이만 20살이지 ‘성인’과는 멀었던 나를 한 발짝 성장시켜준 것 같다. 지원하길 정말 잘한 것 같고 후회하지 않는다. 이 국토순례를 일상생활로까지 연장해 힘든 일에 맞닥뜨릴 때마다 원동력으로 삼고 싶다. 또 얼른 내년 국토순례에 참여하고 싶다. ㅠㅠ
함께했던 모든 소대원 여러분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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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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