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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순례대행진 국토순례 체험수기 5소대 최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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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화 2016-06-25 13:55

처음에는 학과 홈페이지에서 광고를 하길래 호기심이 생겨서 국토순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국토순례하면 우리 부모님이 먼저 생각이 났었다. 왜냐하면, 우리 부모님도 딱 지금 내 나이 때 대학생끼리 국토대순례를 한달가까이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짧은 거리가 아닌 강원도 일대를 도는 행진이었다. 나는 그 얘기만 듣고는 \'우와\'하고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신청을 하였는데, 합격을 하였다는 문자를 받고 나도 드디어 좋은 기회가 온건가하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 총 3차간의 오티에서 각 소대별로 인사도 하고, 구호도 정하고, 가장 중요한 단복과 물품을 배급받았다. 나는 옷을 받았을 때가 가장 실감이 났다.
첫째날에 새벽 6시까지 집합이라고 해서 깜짝 놀라긴 했는데, 그래도 설레는 마음에 10분 일찍 도착해서 단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같이 창단식을 하고 밖에 나와서 해맑게 모자를 던졌다. 또, 마침 지도 교수님께서 연락이 오셔서 교수님의 배웅도 받았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아서 내가 완전 잘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만 더 커졌다. 출발을 하고, 경찰차와 교관님들이 하나같이 줄지어서 보호를 해 주었다. 사실, 나는 도로를 걷는 다는 생각을 안하고 인도를 걷는 줄 알았는데, 도로를 걸으니 차의 속도에 무서웠기도 했다. 그렇게 걷다가 다사를 지나서 다사읍사무소에서 첫 휴식을 가졌다. 별로 힘들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시원한 냉수에 세수도 하고, 또 몸에 물도 축였다. 이렇게 물이 소중한 줄은 그때부터 깨달았다. 몸에 물이 묻은 채, 또 행진을 하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또 얼마후, 첫 점심을 왜관 가는 길 성주에 한 사육신이 기려져 있는 마을회관에서 먹었다. 우리학교 표시가 있는 밥차가 와서 너무 좋았고, 밥도 정말 꿀맛이었다. 소대끼리 동그랗게 앉아서 먹었는데 그때만 해도 좀 어색했다. 각자 밥만 먹었고, 소대장님은 우리에게 파워에이드를 챙겨주기에 정신없었다. 밥을 다 먹고 점심 시간에 한옥아래서 잠을 보충했다. 모자를 베개삼고 시원한 바람을 에어컨 삼아 달콤한 낮잠을 잤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비가 뚝뚝 떨어졌다. 더운 날씨에 비가 와서 마냥 신이 났다. 교관님의 말에 다같이 우비를 뒤집어쓰고, 다시 힘차게 행진을 했다. 그런데 잠시후 비가 그치니 우비를 입어서 그 안에 습기가 차버려 너무너무 더웠다. 근데 고맙게도 \'이제 우비 탈의\'하는 소리에 좋아서 빨리 우비를 개서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런데 정말 나는 첫 날하면 이 때부터가 고비였다. 왜관전적기념비에 들러서 잠심 묵념을 하고, 단체사진도 찍고 난 후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안 쉬고 곧바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에 걸을 때는 괜찮았지만, 계속 걸을 수록 발에 감각은 없고, 다리가 정말 미친듯이 아파왔다. 그래서 내가 마치 로봇이 된 줄알았다. 혹은 무릅에 스프링을 넣은 것같이 내 다리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교관님께 언제 도착하냐고 물어도 교관님은 조금만 가면 다왔다고만 해서 나는 열심히 계속 걸었는데.... 면사무소는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고 애궂은 논길만 보였다. 계속 가던 중에 잠시 어떤 초등학교에 들러서 쉬었는데, 누가 아이스크림을 사줬다고 해서 다같이 쭈쭈바를 빨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 때 나는 빠삐코를 먹었는데 정말 살면서 이렇게 빠비코가 맛있는 줄은 몰랐다 너무 맛있게 먹고 다시 출발해서 몇 시간에 지나고,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저멀리 힘찬 노랫소리가 들려서 나는 드디어 끝났구나를 알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진짜 첫날이 이렇게 길다고 하던데 지금 생각하면 첫날부터 고생 많이 한 것같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남자는 1층, 여자는 2층에서 자서 각자 짐을 풀었다. 그래서 샤워를 했는데 10분만에 9명의 여자들이 일동 다 씻어야 해서 진짜 씻는게 전쟁터같았다. 물은 진짜 차갑고, 시간은 없고 정말 냉수샤워로 정신이 버쩍 들었다. 한 1분 되엇나..? 교관님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우리 모두는 당황했고, 아직 덜 했다고 짜증냈다. 진짜 그 순간은 텔레비전에서 본 진짜 사나이 같았다. 겨우 다 끝내고 이제 스킨로션을 바르고 꿀같은 휴식을 취했다. 그러고 남자들이 위로 올라와 다같이 서로를 알아가기 휘한 후라이팬 놀이를 하며 자기이름을 말하고 나이도 밝혔다. 그리고 교관님이 이름을 확인하셔서 모두 바쁘게 이름을 외웠다.
둘째날에 다시 파이팅을 내서 걷기 시작했다. 다부까지 걷는데 거기까지 갈려면 산 하나를 넘어야 하는 구간이 있었다. 경사도 심하고, 길이 계속 끊임없이 이어져서 너무 짜증나고 발을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데, 꼭대기에서 잠시 쉴때, 누가 또 아이스크림을 사줘서 이번엔 요쿠르트맛 주물러를 먹어었다. 그때는 또 주물러 쭈쭈바가 그렇게 꿀맛인지를 몰랐다. 얼음알갱이 하나하나네 감사함을 갖고, 정성껏 먹었다. 다 먹고 나서 소대장 오빠가 깃발 들사람을 묻길래 이번엔 내가 한번 들어봐야겠다라고 생각해서 소대기를 들고 출발했다. 일단, 소대의 젤 앞 선두에 서니 뭔가 대원들이 나를 따르는 것 같아서 기분도 짜릿했다. 열심히 구호를 외치며 내리막길을 내려갔고, 저수지 앞에서 잠시 쉬었다. 정말 물이 드넓고, 시원해 보이기까지 해서 그때는 매우 물에 풍덩 들어가고 싶었다. 저수지에서 기를 들고 다시 출발하여 산 하나를 넘었다. 그래서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도착해 카레 돈가스를 맛있게 냠냠 먹었다. 다 먹고 또 더위먹어서 매점에서 이번엔 애플젤리맛 주물러를 먹었다. 뭔가 생각만큼 맛있진 않았다. 그리고 전적기념관을 한바퀴 돈후, 기념비앞에서 묵념을 하고, 다시 출발했다. 또 이때부터가 고난의 시간이었다. 태양이 이글이글 콘크리트 바닥을 달구고 있어서 마치 내 몸이 불이 된것 같이 너무 뜨거웠다. 길도 고속도로여서 차소리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무 말없이 가다가 어떤 식당에서 휴식을 취했다. 너무 다리가 끊어질 것 같아서 반상에서 눕고, 나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서 두건에 물을 축이고, 토시에도 물로 적셨다. 그리고 교관님이 얼음필요한 사람 가져가라고 해서 나는 냅다 뛰어 얼을을 두건속에 넣어 얼음주머니를 만들었다. 그래서 걸어갈때 내 몸의 열을 식히는 용도로 아주 유용하게 &50043다. 계속 이어지는 고속도로 길을 걷다걷다 걷다가 다시 승전비에 들러서 설명을 듣고 잠시 쉬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바로 옆 주유소에 있는 곳을 &50043는데 화장실이 너무 별로여서 빨리 해결했다. 그리고 또 쭉 이어진 고속도로를 걸었다. 휴식시간은 자주 있지만, 날씨 때문에 너무 지쳤고, 다리도 너무 지쳐서 나는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언니는 발을 절뚝거리는데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 대단해서 나는 더욱더 힘을 냈다. 중간에 포기할 것 같은 순간에는 교관님께서 땡겨주시고, 뒤에 대원들도 부축여주고, 서로 파이팅하며 정말 눈물나도록 갔던 것 같다. 숙영지인 효령초등학교 정문 근처에 들어서는 순간 음악소리가 들려서 더 힘이 났고, 더 빠른 걸음으로 목적지에 달했다. 학생지원팀선생님과 마을주민들이 반겨주어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도착해서 몸풀기체조를 했는데 다리가 굳어버려서 체조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저녁먹고, 샤워하고 나서 강당내에서 작은 병원을 열었다. 나는 다행히 물집히 없어 물집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그냥 종아리에 파스만 발랐다. 그리고 자기전에 다같이 수박을 먹었다. 사실 수박이 달지는 않았는데 함께 먹어서 더 맛있었던 것 같다. 또,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그래서 나는 2일동안 걸으면서 했던 여러 생각들을 종이에 적었다. 자기 전에 오늘 다리를 너무 고생해서 나의 발바닥에 붙이는 휴족선물을 하였다. 너무 시원해서 행복했다.
셋째날, 마지막 행진 날이라 더욱 파이팅이 넘쳤다. 그래서 교관님이 오늘은 마지막이니까 한 명의 낙오자도 열외자도 없이 가야한다고 말했다.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걱정이 되었는데도 우리는 출발했다. 신령까지 부계를 지나서 갔다. 가다가 뒤에서 대원들이 노래를 부르길래 나도 같이 따라불렀다. 그래서 그런지 걸을때 더욱 힘이났고 다리가 아프지도 않았다. 진짜 걷는 동안 계속 노래를 불러서 너무 숨이 찼다. 하지만 더욱 신나게 힘차게 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주유소를 들러서 쉬었다. 너무 힘들어서 벽돌위에 엉덩이를 붙히고 정신을 놓아버렸다. 진짜 비오는데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하고 생각했다. 그치만 그럴수록 교관님은 더욱 할 수 있다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셔서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다시 점심을 먹고 신녕지구전승비에 도착했다. 여기는 우리 군이 최종 방어선에서 승리한 곳이라고 한다. 나는 마치 내가 군인인 것처럼 너무너무 기뻤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숙소로 발이 닳도록 걸어갔다. 숙소는 성덕대인데 그 글씨가 너무 멀서 매우 기운이 빠졌다. 그렇지만, 주변 대원들이 서로 조금만 가면 다왔다며 서로 힘을 내줘서 나는 끝까지 갔다. 그렇게 정말 힘들게 가다가 성덕대 정문 전에서 매우 힘찬 노래소리와 교수님들이 손은 흔들어주셨다. 진짜 그순간은 마지막까지 걸은 내가 너무 기특하고 대단했다. 그리고 다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걸은 모든 대원들이 자랑스러웠다. 제일 격려많이 해주신 분은 이 프로그램의 총괄을 맡고있는 아버지뻘 교관님이셨다. 잘했다며 수고했다며 아낌없이 칭찬해주셔서 더욱 눈물이 날뻔 했고, 감동적이었다. 체조를 하고, 총장님께서 수고의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그것도 좋았는데 우리가 다함께 완주를 했다는 것이 더없이 기뻤고, 모두 뭉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라서 총장님이 치킨이랑 맥주를 쏘셨다. 우리 모두 즐겁게 먹었다.
마지막날은 버스를 타고 영천에서 대구까지 왔다. 정말 버스를 타고 오면서 또 생각을 하였는데, 이렇게 버스타면 1시간 걸릴 거리를 우리는 걸어서 3&51067동안 왔다는게 너무 놀라우면서도 허무했다. 그래도 그것보다 더 중요한 6.25의 역사와 그 전쟁에서 희생되신 수많은 사람들을 기리면서 걸었기 때문에 더욱 보람차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느낀 것은 정말 다같이 하면은 어떤 것도 못할 게 없다라는 것이다. 이거에서 이어져 내가 학교에서도 그렇고 학교 밖에서도,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공동체 생활에서 현명하게 잘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아서 정말 국토순례 더할 나위없이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