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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순례대행진 국토순례체험수기 3소대 강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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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규 2012-07-20 16:02


처음 국토순례를 신청하게된 계기는 교수님의 추천에 혹해서 신청했지만

여러번 예비소집에 나오면서 신청하길 잘했다 평생에 있어 한번쯤은 해볼만 하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들뜬마음으로 남은 예비소집일도 참여를 하면서 어느세 나는 국토순례를 위한

짐을 싸고 있었다. 드디어 출발일이 되었고 예상외로 아침일찍 눈이 떠서 시간에 마춰가는건

별로 큰일이 아니였다. 짐을매고 국토순례의 단복을 입고 첫차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하고 이미 많은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곧이어 마지막 예행연습을 하면서

이제 정말 출발이구나란 생각이 들기도전에 이미 모자를 던지고 있었다.

예상외로 지금생각해보니 첫날이 꾀나 힘들었던거 같다. 그렇게 오래걷는것은 처음이였고

그당시 대구의 땡볕아래서 국토의 날중에서 가장 더웠기때문에 지금에 와서 힘들다고 생각이든다.

첫날출발당시 여러분들의 응원을받고 정말 포기없이 통영까지 꼭 완주하겠다는 생각을하고

들뜬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힘을 넣어 걸었다. 시간이 왜이렇게 안가나 쉬는시간은 대구를

벗어나야만 쉴려나 할려고 생각할때쯤에야 겨우 우리는 다리밑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쉬는시간엔 어떡게 쉬어야할지 몰라서 멀뚱멀뚱 서있다가 양지바른곳을 찾아 겨우 앉았다.

앉은지 얼마 되지않아 지금은 귀에 딱지가 앉을만큼 들었던 " 출발 5분전 " 이란 말을 처음들었고

예상대로 5분이 채 가지않아 우리들은 또 달아오른 아스팔트길을 걷고있었다.

그렇게 어느센가 대구의 공단지역을 벗어나면서 날씨가 조금은 덜 뜨겁게 느껴졌다.

어느센가 이정표에선 현풍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힘들었던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걸을씩

목적지에 다가서고 있었다. 어느센가 어디선가 노래가 들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노래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채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서야 바로 우리들은 그노래가

" 아~ 이노래가 그렇게 우리가 듣고싶어했던 도착했을때의 노래구나 " 란 생각을 했고

그렇게 도착의 감흥에 빠지기도 전에 우리가 그렇게 예비소집일날 땀을 흘리면서 연습했던

춤의 노래가 들렸고 처음엔 박자를 놓쳐 몇번 틀리기도 했지만 노래를 듣고 몸을 움직이다보니

어느센가 웃는얼굴로 우리모두다 첫날의 도착을 즐기고 있었다.

도착을 하고 우리들은 소집일에만 들었던 천막으로 둘러쌓인 수돗가가 우리의 샤워장이구나

생각을했고 바로 우리들은 식사순서를 정하고 첫날의 저녁을 맞이했다.

그러고나서야 우리들은 드디어 강당에 들어가게됬다. 첫날의 밤이 더욱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강당에모여 빨리 모이는순서대로 샤워를 하게된다는 소릴듣고 서둘러 준비를 마쳐

일열로 모였다. 그렇게 샤워순서에 따라 샤워를 했다. 처음 들어간 샤워장은 그냥 마치...

경악만을 나오게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우리들은 찬물에 몸을 맡겼다.

씻다보니 의외로 차갑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기분좋은 샤워를 끝마치고 우리들은 강당에

소대별로 다시모였다. 그렇게 우리들은 소대별로 친목의 시간과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쓰고서야

첫날밤에 잠이 들었다.

둘째날의 아침이 밝았고 예상외로 몇몇의 일찍일어나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들은 예상외로

일찍일어나서 모든사람들도 다들 일찍일어나서 눈을비비며 일어났지만 다들 정신은 빠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때마침 가장늦게 일어나는 소대가 그날의 숙영지의 정리를 한다는 소릴듣고

다들 한마디로 미친듯이 짐을싸서 숙영지를 나가게되었다. 그렇게 하루가 또 시작했고 우리들은

둘째날을 시작했다.

둘째날은 창녕으로가는 코스였고 이른 아침 일어가는것은 어느때보다 가장 힘들었다.

아침이되자 전날에는 아프지않던 발바닥과 발목이 아프기 시작했고

걸을때마다 통증이바로 머리끝까지 닿을듯 아파왔다. 이제는 점점 쉬는시간을 시간으로가

아니라 내발의 통증으로 이정도 아프니 이제 쉴때가 됐다 싶으면 얼마안가서 쉬는곳에

도착하였다. 우리들은 쉬는시간마다 언제그랬냐는듯에 다들 아스팔트 흙길에 앉아쉬고

나도 너무 힘든나머지 그늘만찾아서 누워서 쉬었다. 그래야지만 다음 쉬는곳까지의

내발이 버텨줬다. 그렇게 곳곳의 쉬는곳마다 내안방인마냥 다들 눕기시작했다.

점점 점심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고. 아마 이날인것으로 생각이난다.

우리대학을 나와 사업장을 차리신 선배님께서 우리들이 점심으로 쉴 숙영지를 찾는도중

어려움을 겪자 자신의 사업장을 비워 이곳에서 쉬다가라란것을 우리에게 말씀을 전하고

우리들을 맞이해주셨다. 이때 나는 정말 감동이란것을 했고 아..정말 감사하단 말도

진심으로 전하고 나도 만약 나중에 이런일이 있더라면 내가 직접 나서서 도와줘야겠단

생각을 했다. 정말 감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선배님의 곁을 다시 떠날려는 찰나

센스있으신 우리의 선배님은 물과 초콜릿 그리고 사탕을 정성스럽게 담아서

우리들에게 하나하나 손수 전해주셨고 우리들은 마지막까지 감동을하고 다시 창녕으로 향했다.

곳곳 위험한 찻길을 걷고 농촌의 길을걷고 국토를 하면서 많이 느꼇다.

우리나라에는 참 많은 논과 밭 차가 있다는것을 느꼇다.

그렇게 차로를 걷다보면 지나는 차들이 우리들에게 응원을 하듯이 클락션을 울려줬고

그때마다 힘이 났다. 그렇게 지날듯 안지날듯한 하루가 점점 가고있었다.

해가 점점 뉘웃뉘웃 지자 날씨는 점점 서늘해져갔지만 발의 통증은 점점 극에 달했다.

둘째날 해가 지기전부터 나는 더이상 발이 내발이 아닌것을 알았다.

하지만 둘째날의 숙영지는 이미 도착해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지쳤지만 도착의 노래를 듣고 다같이 춤을 추고있었다.

둘째날이 되자 다들 국토의 밤의 룰을 알고 다들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특히 나의 소대원들은 이번밤에는 [ 콘센트 ] 를 차지하기위한 움직임으로 다른소대보다

더욱더 바삐움직였다. 이날부터 다들 콘센트찾기에 눈에 불을키고 움직였고 이날 우리는

콘센트를 사수했다. 정말 기뻣다. 숨겨진 우리들의 또다른 노력이라고도 할수있을것이다.

그렇게또 샤워의 순서를 지키기위하여 바로또 모여서 샤워를 준비했고 창년의 숙영지인

학교에서는 샤워장이 조금 멀었던거같다. 하지만 드디어 샤워를 한단 기쁜생각에 나는

맨발로 뛰어갔고 정말 숙영지에 도착해서는 발의 통증이 언제그랬냐는듯 덜해졌고

이날에는 학교에 감사한분들이 보내주신 야식을 얻기위해서 소대끼리 치열하게 응원열전도하고

응원가와 구호를 만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즐겁게 우리는 또 하루의 밤을보냈다.

어느센가 하루하루가 가는것을 느끼고 안갈거같은 시간도 점점 우리들이 시간을 보내면서

시간은 우리를 재촉하듯이 시간은 더욱더 빨리갔다.

드디어 중간지점으로 향하는 셋째날의 아침이 밝았고 이날아침역시 아침청소를 피하기위한

아침전쟁이 시작되었고 다들 아침과 밤에만큼은 다른소대랑은 정말 전쟁을하듯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아침식사를 끝낸 우리들은 중간지점인 함안으로의 발길을 옮겼다.

걷다보니 드디어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고 우리들이 바라던 비가 오기시작했다.

우비를 착용하자마자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고 그래도 비가오니 몸이 힘든것을 느끼지못했다.

다들 비가 우리를 응원해주는것같인 힘들내서 더욱더 함안으로의 발길을 더욱빨리 움직였고

그렇게 점심시간이 다가왔고 우리들은 좋은소식을 듣게되었다. 비덕분인지 오전에 엄청많이

키로수를 줄였다고 했다. 오후에는 천천히 걸어도 충분히 시간안에 도착한다는 소식을듣고

엄청기뻣다. 점심시간은 언제나 빨리가듯 빨리지나고 우리들은 다시 빨리 함안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오전의 이야기가 맞았다 쉬는곳은 많아졌고 쉬는시간또한 길어졌다.

하지만 " 출발 5분전 " 이란 말이 정말 많이들려 이제는 저것이 저승사자의 말인냥

다들 야유를 퍼붓고 진심으로 짜증을 냈다. 하지만 숙영지에 가까워질수록 다들 힘이더욱났다.

하지만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사람들 역시 정신적으로의 힘은 매우 강했지만

육체가 힘들어지자 다들 정신력도 흐트려진거같았다. 나도 천국으로 향하는 " 스타렉스 " 에

유혹이 매우 강하게 온적도 엄청많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뿐만이 아니라 여러사람들도

다 똑같이 힘들다. 내가 여기서 포기해버린다면 나중에 도착했을때의 후회도 들것이고

내동료들도 더욱더 힘이들것이다\' 란 생각을 하고 정말 어금니 꽉깨물고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나의 한계점인 셋째날의 숙영지가 바로 눈앞에 보이자 정말 눈물이 났다.

하지만 강해보이기 위해서인지 부끄러워인지 모르겠으니 눈물을 몰래 훔치고 나서

바로 숙영지의 노래에 몸을 맡겨 흥에겨워 다들 마춰왔던 춤을 추고 다들 흥에겨웠다.

그렇게 밤이 다가왔고 정말 오지않을거같던 밤에 취해 언제 그랬냐는듯 뛰어다니고

정말 몸을 놓고 편히 쉬었다. 매일밤에 찾아오는 레크레이션 & 조교님들의 유머에

우리는 정말 신나게 부끄럼없이 웃었고 그날의 피로를 다 풀었다.

그렇게 오지않을거 같던 밤이 가고 가지않길 바랬던 밤이 어느세 또 가고있었다.

드디어 넷째날의 아침 반이상을 걸어왔다는 생각으로 우리들은 다른 아침을 맡이했다.

기쁘고 또 너무 기뻣다. 하지만 오늘은 산을 타고 코스도 험난하다는 소리를듣고 걱정도 됬지만

넷째날이니까 엄청 힘을냈다. 발의 통증도 극한으로 다다랐고 정신력의 한계도 느꼇지만

동료와 소대원들의 화이팅에 힘입어 정말 평생에 기억남을 추억을 한발한발 새기고있었다.

드디어 극한의 코스에 다다랐고 정말 힘이 들었다. 정신력과의 싸움 내 육체와의 싸움

그리고 같은소대원들의 표정에도 힘이든다는 표정을 읽고 나도 여기서 더이상 힘이든다는

티를 내면 모든소대원들이 더욱더 힘들어할것을 느끼고 엄청 많이 힘들었지만 꾹 참고

서로 으1968;으1968;하며 가끔은 화이팅이란 소리가 나지않았지만 힘을내서 걷다보면

어느센가 쉬는곳이 보였다. 쉬는곳이 보인다는것과 이제 쉰다는 시간으로 가끔은 그때마다

발이 풀려갔지만 쉬는곳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드러눕고 다른사람의 시선은 무시한체

정말 집에서보다 더 편한자세로 쉬고 내다리를 마사지하고 내 다리에게 미안하단말을

연신 하면서 또 다음쉬는곳까지 걷고 또걷고 걷는것만 했다.

어느센가 힘들다는 생각보다 내머리속은 심심하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심심함을 버리기위해

더 열심히걷고 이때부터 소대원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끝말잇기등 여러 말로할수있는

게임을하면서 힘든것을 잊고 웃으며 걸었다. 이러자 시간은 정말 금방금방 가고있었고

그렇게 마산의 숙영지에 도착하였고 역기 그래왔던거처럼 오지않을거같던 밤에 취해서

언제 힘들었냐는듯 다들 노래에 취해 서로 화이팅하며 숙영지를 진심으로 맞이했다.

여러 숙영지에서 기쁜일도 많았다. 역시 그렇게 또 밤의 행사와 이날은 6소대 조교님의

깜짝 생일파티가 있었다. 우리들도 멀뚱멀뚱히 서서 축하를 해줬다.

가장 얼굴로만도 웃기고 말하나하나 빵빵터지는 조교님이였기에 웃이면서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드디어 통영으로 향하는 마지막 숙영지로 향하는 고성으로의 아침이 밝았고 생각을 다잡고자

오늘만 가면 통영까지는 힘들지 않을것이니 오늘이 마지막이라는생각에 고성까지 힘을내서

걸었고 오지않을거같던 밤이 오고 이것을 반복하자 점점 몸은 국토에 적응되서 어느세

즐기고있었다. 그리고 우리들또한 얼굴에 다시 미소가 피어났다.

그렇게 마산에서 고성으로 향하는 마지막같은 길이 끝났고

마지막 통영으로 향하는 아침이 밝았다. 다들 이제 끝이라는 미소와 조금은 아쉬움을 띈 얼굴을

하고서 통영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었다. 바다가 보이는 전경과 가끔은 바다냄새가 나는 곳과

우리를 맡이해주는 통영시민 여러분덕에 발의 물집은 언제 그랬냐는듯 점점 구든살이 되어가고

내몸또한 국토에 적응되어 힘들다는 생각이 안나게 정신력이 나를 이끌었다.

드디어 마지막 숙영지인 통영 청소년 수련관의 이정표가 보였고 우리들은 이제껏 가장 힘껏

화이팅을 외쳤고 우리의 소리가 메아리쳐서 다시 들릴정도로 힘껏 외쳤다. 우리들을 환영해주는

목소리가 들리기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단합을 보여주는 대~한민국 구호를 다들 외쳤고

주민에 피해가 될정도로 시끄러웠지만 다들 우릴 받기듯 표현해주고 같이 화이팅을 외쳤다.

드디어 우리를 마중나오신 각각 과의 교수님들이 우리를 반겨줬고 우리의 힘을 더 북돋아주셨다.

우리들은 마침내 청소년 수련관에 발을 내딧었고 기쁨의 눈물이 절로 났다. 우리소대만의

소대가를 외치며 기쁨을 만끽하고 우리를 이끌어줬던 발의 고통이 너무커서 가끔은

자리를 비웠던 소대장님이였지만 그 어떤 소대장보다 더욱 우리를위해 힘써주시고

가장 멋지신 우리 소대장님을 헹가래 태워줬다. 정말 기뻐서 축하를 드리고

축하의 샴폐인을 터뜨리고 이리저리 샴폐인으로 샤워를하고 기쁨을 만끽했다.

우리의 마지막 노래가 울리가 다같이 어느때보다 더욱더 즐겁게 춤을춰 나갔다.

발의통증도 점차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의 기쁨을 나눴고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고

방배정을 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날밤의 야식 치킨과 그렇게 그리웠던 맥주를

소대원끼리 같이 마시며 마지막을 장식할 멋진 밤을 보내고 더욱더 친해지기위해

더욱더 많은 말을하고 술자리를 즐겼다. 그렇게 우리들의 밤은 점차 지나가고 드디어

대구로 향하는 정말 마지막날의 아침이 밝았다. 그렇게 우리들은 대구 우리들의 모교

그이름도 멋진  " 계명문화대학 " 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고 가끔은 우리가 지났던 길도

보이기도 했지만 어느센가 눈을뜨자 우리들의 학교가 눈앞에 보였고 아주..아주많이 허무함에

빠졌었지만 그것도잠시 아쉬움과 언제또 이렇게 많은사람과 이런길을 걸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폐회식을 했고 이제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들고 눈물이 잠시 날려했지만

기쁨의 환희가 나를 더욱 기쁘게 했다. 우리들이 180Km를 걸의며 같이 비를맞고 땡0339;아래

같이 해온 우리들의 소대기에 멋지게 우리들의 이름과 각자의 할말을 적자 정말 이제

헤어져야만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와 우리들의 6박 7일단 국토대순례는

짧은듯 긴듯 어느센가 끝나고 말았다.





다른소대는 모르겠지만 우리소대는 서로 어색한감이 많았다.

나이차가 많이나는 형님도 계셨고 소대장님의 발이 너무 아프셔서 자리를 비우신적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나름 같이 화이팅을하고 같이 6박7일간 힘들 많이 냈다.

특히 전에 다치셨던 발이 더욱 악화되어서 어느센가 우리 뒤에서 화이팅을 외치시며

지팡이를 집으시면서 네발로 표현했던 형님이 있었기에 더욱 힘을냈고 포기하지않았다.

정말 어쩔땐 멋지간 말이 입밖으로 나왔고 감동이란걸 했을 순간도있었다.

우리소대의 조교님은 다른소대의 조교님들과는 다르단걸 느꼇다.

좀더 우리와 가깝게 느껴졌고 무심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들은 다른소대 소대원들보다

우리조교님을 믿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조금더 지시에 잘따랐다면 조교님의

목도 다리도 조금은 덜 힘들었겠단 후회도 든다.

우리소대 조교님이 가장 멋졌습니다.

우리를 위해 많이 힘써주신분들 정말 많았다.

우리를 위해 힘써주신 팀장님 각종 위치에서 우리에게 후원을 해주신 교수님들 선생님들

그리고 가장우리와 친밀하게 붙어서 우리를 이끌어주신 각소대 조교님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