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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흔적

여덟 번째 흔적[간호학과 이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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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목실 2020-10-30 15:39

<이 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한복음 3장 16절-

어린 시절 내게는 이 성경구절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나님을 느꼈고,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사랑한다는 크기가 내겐 체감되지 않아서였다. ‘이처럼’ 이 가진 거대함을 나는 몰랐고, 스스로 알아갈 수도 없었다. 폭풍과 같은 시기,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라 했을 때, 나는 잠시 걸어가다 물 깊은 곳으로 빠지고 말았다. 갈릴리 호수에 이른 폭풍에 휩쓸려 예수님을 잠시 잊고 살았던 시기여서 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거대한 사랑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유학길로 오르게 된다.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먼 타국 땅이었다. 필리핀 국립대에서 hotel and management라는 전공으로 대학공부를 하며, 지내고 있을 시절이 있었다. 나는 내 고등학교 때 가졌던 ‘이처럼’이라는 질문에 다시 답을 찾기 시작했다. 왜 그랬냐고 물으면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서도, 성령 충만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우리과에서 하는 호텔실습을 할 때, 처음보는 이들에게 호되게 욕을 먹은 날이면 그렇게도 궁금함이 솟아났다. 도저히 나는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사랑할 수 없는 저들을, 어떻게 사랑할까. 하나님은 심지어 자신의 명령을 어긴 대역죄인들을 사랑하는 것이었을텐데, 그 사랑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 것일까. 온갖 질문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내 머리 속을 비집고 다녔다. 고된 실습을 하고 집에 와서 누웠는 데도 머리는 여전히 지끈 거렸다. 그러다 온 몸이 아파오고 위가 찢어지는 아픔이 느껴지더니, 도저히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집에 계시던 사모님을 한 번 부르고 나서 내 기억은 거기서 끝이 났다.

눈을 떴을 때는 집이 아닌 새로운 공간이었다. 눈 앞에는 근심 가득한 눈을 한 사모님과 처음 보는 두 분이 계셨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 두 분은 박누가 선교사님과 그분을 돕는 간호사님이셨다. 나를 처음 봤을 두 분은, 전혀 거리낌 없이 나에게 지극정성으로 진료를 해주셨다. 내가 스스로 죽을 먹고, 기력이 회복 될 즈음에 그 두 분은 아플 때 언제나 찾아오라는 이야기와 함께 웃음으로 나를 배웅해주셨다.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그 두 분은 달랐다. 조금은 초라한 병실 이었지만 사랑이 그 방안에 가득해서 전혀 차가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때서야 거대한 사랑이 조금씩 이해되게 시작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이처럼...이처럼’ 나는 이 말씀을 되새기며 한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 먼 타국 땅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주신 선교사님께 감사드렸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예수님을 닮은 박누가 선교사님을 통해서 나는 그 사랑을 깨달았던 것이다.

졸업 후 한국에 돌아온 나는,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박누가 선교사님처럼 의료를 통해 하나님의 거대한 사랑을 알리는 간호사가 되겠다는 목표였다. 하나님은 필리핀 땅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박누가 선교사님을 보내셨을 것이라는 생각과, 그 사랑을 나도 받아서 나도 그 계획하심에 동참하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계명문화대 간호학과에 합격 소식을 받고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입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려운 공부들과, 처음 접하는 용어들, 학습량에 치여 내가 이곳에 오게 된 목표를 점차 잃어버리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간호학과 학생이라고 추켜 세워 주고, 부모님은 딸이 간호학과를 들어갔다는 사실만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시선 역시 하나님에서 땅으로 옮겨졌다. 좋은 병원을 위해 스펙을 쌓고, 취업 고민을 하고, 매일의 염려가 생겼다. ‘에클레시아’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늘 외치고 다녔던 나인데, 이미 과녁을 벗어난 화살이 되어 다른 곳으로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었다. 그 화살의 끝은 하나님이 아닌 맘몬과 세상이었다. 내 마음속에는 점점 요한복음 3장 16절이 지워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공부할 게 너무 많고, 과제도 밀려있는 상황이어서 정신이 없는 날이었다. 그런 날이면 채플수업도 귀에 잘 안들어 오기 마련이었다. 그 때, 우리학교 목사님께서 박누가 선교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셨다. 오른 손 굳은 살을 괴롭히고 있던 샤프를 잠시 놓고, 나는 그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이내, 나는 내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영상 속에서도 선교사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었는데, 나는 지금 내 상황에만 함몰되어 하나님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내 속에 무언가가 끓어 올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왜 나를 꼭 계명 문화대로 보내셨는지를. 대구가톨릭대, 수성대, 영진전문대를 두고, 이곳을 선택하게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 학교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이 여전히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향한 계획이 없어지지 않음을 알려주기 위함이셨다. 늘 지겨워 하며, 듣지 않았던 채플이지만, 이 한 순간을 위해 내가 그 곳으로 보내졌던 것이다.

나는 2학년 2학기를 살 고 있다. 코로나가 심해져서 학교를 간 날이 손에 꼽을 정도지만, 오히려 평소보다 기쁘다. 이 삶을 통해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이 더욱 커질 날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기도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가 내게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요?“라고 물어보면 첫 번 째로 변화된 내 모습을 봐달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신 박누가 선교사님 이야기를 해 줄 것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보내신 독생자,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봐달라고 할 것이다. 마야 문명이 흔적을 남긴 것이, 이스터 문명이 이스터 섬에 거대석상을 남긴 것이 우리에게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이 남기신 흔적은 2000년 동안 사랑을 있게 했고, 그 사랑으로 선교사님과 같은, 우리학교 목사님과 같은 분이 계시게 했으며, 그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다. ‘이처럼’ 사랑해주신 하나님을 위해 오늘도 감사함으로 주 앞에 나아고자 한다.